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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가 세계를 바꾼다,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 하성태  ( 2015.09.01 )  l  조회수 : 1410
  • “자신의 거짓을 진실로 믿는 건 인간뿐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단 두 편의 영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70개 이상의 영화상을 휩쓴 <액트 오브 킬링>(2012)과 201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다섯 개 부문과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평화영화상 수상을 비롯해 37개 트로피를 자랑하는 <침묵의 시선>(2014)이 그것이다. 그가 <침묵의 시선> 개봉(9월 3일)을 앞두고 8월 25일 내한했다.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은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 당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와 양민이 학살당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담은 연작과도 같은 다큐멘터리다.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의 주범이었던 안와르 콩고를, <침묵의 시선>은 그 100만 명 중에서 유일하게 목격자를 남기고 죽은 희생자의 동생 아디에게 카메라를 가져간다. 자신의 살인 행위를 자랑하며 기록영화까지 찍었던 <액트 오브 킬링>의 학살자는 이 영화에서 끝내 죄책감을 토해내고, 피해자는 직접 가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려 한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과거는 죽지 않았고,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편집의 원칙을 묻자 맥북을 펼쳐 들고 한 장면 한 장면 직접 설명하던 그는 자신의 영화처럼 진중하고 섬세한 감독이었다.

     

    출국을 하루 앞둔 지난 28일 수입사 엣나인 필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감독이 굉장히 독하거나 매력적인 사람일 거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해자들의  감정을 끌어내 카메라에 담고, 또 마음을 열게 했으니까.

     

    독한 사람으로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가해자들이 마음을 열고 말하게 하는 건 특별한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솔직하게 말하게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가해자들을 단순히 살인자로, 악당으로, 괴물로 볼 게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봤다. 그들에게도 행동의 맥락이 있고, 복잡한 상황이나 조건이 있다는 걸 이해해야 했다.

     

    노동조합을 다룬 비디오 다큐멘터리 <글로벌리제이션 테이프>(The Globalisation Tapes) 촬영을 위해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한 것이 2001년이다. 이후 <침묵의 시선>을 촬영하기까지 10년이 걸린 셈인데, 그동안 생각의 변화는 없었나.

     

    처음엔 가해자들이 괴물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도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 보통 사람과 다를 것 없다. 사실, 그들을 괴물로만 치부하는 건 쉽다. 그래야만 저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고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디는 달랐다. 그에게서 인간을 보는 관점을 많이 배웠을 정도다. 아디는 끔찍한 만행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가해자들을 보고도 죄책감 때문에 그럴 거라고 이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해자들이 자기 자신조차 속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물도 거짓 행동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건 인간밖에 없다.

     

    같은 소재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을 모두 반영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많은 관객이 두 영화가 같은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같은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이슈를 다룬다. <액트 오브 킬링>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거짓말과 판타지를 지어내는지 보여주고, 그것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도피주의 말이다.     

     

    반면 <침묵의 시선>은 이런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관한 이야기다. 아디 가족들은 가해자와 살인자들이 주변에 있는 상황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거니까. 잠깐 잠깐 가해자를 비추다 침묵이 흐르는 장면들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공포로 가득 찬 풍경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편은 미학적인 면에서 서로 보완해주면서, 다른 듯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한 편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대상을 대하는 윤리나 대상과의 거리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훌륭한 논픽션 영화를 만들려면, 나 자신이 어떤 걸 겪고 있는지,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늘 의식해야 한다. 인생을 살 때도 눈을 뜨고 마음을 열듯이 촬영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라고, 논픽션이라고 거리를 두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픽션을 만드는 방법 자체가 대상과 함께하는 여정이기 때문에, 그 작업을 통해 대상이나 나나 인생이 변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간다. 바삐 돌아가는 촬영 현장에선 의식 못 할 수 있지만, 편집을 하면서 그런 점을 더 많이 의식하고 깨닫게 된다.

     

    편집의 리듬감이 굉장히 독특하고 시적이다.

     

    영화의 은유는 컷의 길이와 공간과 관계가 있다. 내 경우 내러티브를 이미지로 표현할 때 종종 조금 더 길게 보여주기도 한다. 또 컷이 엇박자로 들어가거나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대조를 이루는 것도 좋아한다. 안와르가 목을 졸리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다가 그 호흡과 소리가 가라앉기 전에 비행기 착륙 장면을 삽입한 것도 그런 원칙이 반영된 결과다.

     

    원래 아시아의 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나.

     

    한국에 대해선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보다는 베트남 미라이 학살 사건도 그렇고, 아시아에서 미국 정부와 CIA가 독재 정권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면 차기작으로 좀 더 거시적인 역사나 거대 악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될까.

     

    구체적으로 말하긴 곤란하다. 예민한 주제는 아닌데, 지금 촬영 중인 대상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외국 기자에게 한마디 한 것이 기사화돼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 문제를 다뤘을 땐 내가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처지가 달라졌기도 하고. 기사에 인용된 내용 때문에 오해가 생기면 다큐멘터리 작업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혹시 감독이 되기 전엔 어떤 환경에 영향을 받았나. 이런 작품을 찍은 배경이 궁금하다.

     

    살아온 인생이 내 영화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든 도덕이든 내가 배웠던 모든 것이 가르쳐준 교훈은 단 하나다. 홀로코스트 같은 일이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과 그의 가족은 유대인이다.) 과거 남반구나 동남아에서 그런 학살이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치가 전쟁에서 패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했었다.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을 방문했을 때가 스물여섯 살이었는데, 그때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결국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을 만들게 됐다. 아, 가족들로부터 지구력이 좋다는 얘긴 가끔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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