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좋아야 흥행이 된다”
- 송순진 ( 2016.04.29 ) l 조회수 : 1057
- <이터널 선샤인> 재개봉한 노바미디어 주원주 대표
지난해 11월 5일, 10년 만에 재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멜로드라마 <이터널 선샤인>이 한국 극장가에 돌풍을 몰고 왔다. 디지털로 다시 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은 4월 13일 기준 32만4천 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았으며, 요즘 한국 극장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6개월 가까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의 극장 배급 판권을 구매해 재개봉 시장의 성공 신화를 쓴 노바미디어 주원주 대표는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를 했지만 끝내 얼굴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어렵게 그를 만나 <이터널 선샤인>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관해 물었다.<이터널 선샤인> 재개봉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노바미디어는 DVD와 블루레이 제작사로 유명한 회사다.
그렇다. 성남에 있는 회사에서는 DVD와 블루레이를 제작하고, 나는 서울에서 수입과 배급, 온라인 업무를 하고 있다.
영화 사업에 뛰어든 것은 언제부터인가?
1985년에 비디오 사업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예술영화 수입과 배급을 했다. 대표적인 게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시리즈와 자연 다큐멘터리 <마이크로코스모스> 등이다. 그러다 영화시장의 대세가 DVD 쪽으로 이동할 즈음 일본 애니메이션에 주력하는 DVD 애니(노바미디어의 전신)라는 회사를 만들어 <은하철도 999> <보노보노> <카우보이 비밥> 등을 발매했다. 또 DVD 잡지인 ‘DVD 리뷰'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이 시장이 불법 다운로드의 영향을 워낙 많이 받아 힘들었다. <카우보이 비밥>을 가지고 단속을 한번 해봤는데 2,400명이 적발될 정도였으니까. 일 잘하는 여러 사람이 업계를 떠나기도 했다. 나도 힘이 들어서 5년 전부터 후배 김형우 대표에게 DVD와 블루레이 쪽을 맡기고, 나는 다시 영화 수입과 배급을 시작했다.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 원작의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수입했고,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재개봉하기도 했다.
<이터널 선샤인>의 재개봉 과정이 궁금하다.
2005년에 <이터널 선샤인> 흥행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수입사가 폐업했다. 나중에 내가 영화 판권을 다시 구매해서 개봉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관객 3만 명을 목표 삼아 20~30개 관 정도로 작게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주변에 의견을 물으니 십몇 년 홍보를 한 전문가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관객 5만 정도를 기대하며 P&A 비용을 조금 늘렸다. 하지만 한국의 셀러브리티들이 좋아하는 영화로 회자되면서 기대가 커졌다. 여기에 단독 개봉을 결정한 CGV가 도움을 줘서 100개 관 규모로 개봉하게 됐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마침 극장에 변변한 멜로영화가 없었던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재개봉 영화들의 약진은 부가판권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듯한데.
노바미디어에서 DVD나 블루레이로 출시된 영화 중에 재개봉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경우가 여럿 있다. <영웅본색> <무간도> <러브레터> <아멜리에> 등이다. 극장에서 그 영화들을 보고 좋아하게 된 관객들이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 거다. 그렇지만 IPTV와 네이버 N 스토어 등 온라인 부가판권 시장의 반응은 또 다르다. 이게 사실, 영화마다 다른 것 같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의 경우 극장 수익은 별로였지만 온라인 시장에서 지속적인 매출을 내고 있다. ‘일본영화 기획전‘ 같은 행사가 열리면 빠지지 않는 편이고,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조용히 관객이 늘었다. 정작 <이터널 선샤인>은 극장 흥행에 비하면 온라인의 반응은 폭발적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VOD 시장에 나와 있던 작품인데다 볼 사람은 극장에서 다 봤기 때문이겠지. 케이블 TV 쪽 판권은 아예 풀지 않았다. 이 영화를 재개봉한 이유는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운로드 방식도 좋아하지 않아, N스토어 다운로드 서비스도 뒤늦게 시작했다.
30년간 부가판권 시장 전반을 겪어왔다. 최근 다양한 방식의 온라인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우선, 이제 DVD 시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블루레이 시장은 적은 규모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블루레이는 마니아가 대상이기 때문에 서플먼트나 패키지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그런 걸 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이 업계를 끌어나가고 있다. 해외에서 제작된 것보다 국내 블루레이가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니 참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부가판권 시장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은 지금은 정체기다. 옛날보다 플랫폼이 많아지면 그만큼 매출이 뛸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어느 플랫폼이건 한계점이 있고, 그걸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간급 영화가 어느 정도 매출의 비중을 차지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플랫폼이 결국 살아남을 거라고 본다.
극장 스크린 독과점과 흥행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온라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는데.
관객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점에서는 극장보다 온라인이 유리하긴 하다. 그렇지만 예술영화는 노출 빈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극장 개봉 없이 온라인 개봉만을 목표로 영화를 수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다만, 예전과 달리 요즘은 광고를 보면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식이 많아지고 있으니, 지속적인 매출을 기대해볼 수는 있다.
재개봉이 늘어나고 있다. 제2의 <이터널 선샤인>을 목표로 하는 동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 예술영화 판권 가격이 많이 올라서 예전에는 예술영화답게 풀던 영화들도 상업영화처럼 풀게 된다. 10만 명만 들어도 성공이었는데 요즘엔 10만 명 들면 망한다고 한다. 재개봉 영화도 마찬가지다. <러브레터> <이터널 선샤인> <러브 액츄얼리> 등 작년 연말 개봉한 몇 편 빼고는 잘 안 된다. 원래 한번 잘되고 나면 그 후엔 힘들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영화는 마인드가 좀 달라야 하지 않나. 예술영화라고 무조건 소규모로 배급하란 법은 없지만 너무 흥행을 목표로 접근하는 것도 좋지 않다. 보석처럼 아끼고 다듬어가면서, 자기만 알고 있던 그 영화의 가치를 관객들과 함께 발견해나가면 좋겠다. 재개봉은 그 영화를 추억하고 다시 본다는, 소중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걸 고려하고 있나?
느긋하게 찾고 있다. 예술영화는 그 분야 최고에 가까운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터널 선샤인>은 멜로에서 최고였다. <아멜리에>도 마찬가지였고. 영화가 좋아야지, 홍보와 배급으로 억지로 흥행작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이터널 선샤인> 흥행은 노바미디어에 어떤 의미를 남길까?
이런 경험은 영화업에 종사한 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다. DVD와 블루레이는 단번에 크게 성공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 한 편이 잘되면, 손해를 보더라도 DVD와 블루레이로 발매하고 싶었던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 점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