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반호 픽처스 제작 부문 대표 킬리언 커윈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의 주요 관심사는 현지 영화 제작이다. 현지 스태프와 언어로 제작된, 현지 시장을 노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2013년 설립된 영화 투자·제작사 아이반호 픽처스는 이 새로운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미국 영화사 중 하나다. 설립과 동시에 한국, 일본, 중화권 지역 등의 현지 영화 시장에 뛰어든 아이반호 픽처스는 10여 편의 현지 언어 영화를 제작해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곡성>이 대표적이다. 6월 28일과 29일 개최된 제5회 KOFIC 글로벌포럼 현장에서 이 현지화 작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제작 부문 대표 킬리언 커윈을 만났다.
2013년 아이반호 픽처스는 이십세기폭스와 인도,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지역의 현지 언어 영화 제작을 위한 4년간 공동 자금 투자 협약을 체결하면서 아시아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아시아 영화 산업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영화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감독 중심의 영화 문화를 확립하고 있다. 이런 문화를 아이반호 픽처스가 만드는 영화에 접목하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협업을 통해 미국 영화 제작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고, 반대로 한국의 인재들을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간 몇 편의 현지 영화를 제작했나?
폭스 인터내셔널과 아이반호는 10편의 현지 영화를 제작했다. 한국에서는 <슬로우 비디오>(2014), <나의 절친 악당들>(2015), <곡성> 등을 제작했고, 중국에서는 리메이크 영화 <신부들의 전쟁>(2015) 등을 만들었다.
현지 영화 투자 기준은 무엇인가?
독립영화다운 열정과 참신한 스토리가 중요하다. 아이반호 픽처스 자체가 독립영화 제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창의적인 감독이 만든 창의적인 스토리에 투자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현지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현지에서 어떤 스토리가 좋고 나쁜지를 판단하기 힘들다. 어떤 스토리가 한국 시장에 맞는지에 대해서는 한국 파트너가 나선다.
한국영화 3편을 공동 제작해 보니 어떤가?
<곡성>은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지만, <슬로우 비디오>와 <나의 절친 악당들>은 흥행하지 못했다. 영화가 항상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슬로우 비디오>의 김영탁 감독, <나의 절친 악당들>의 임상수 감독, <곡성>의 나홍진 감독과는 계속 작업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곡성>의 경우 현지와 해외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좋은 경험이었다. 하나의 매뉴얼이 될 수 있을 만큼 모든 과정이 잘 진행됐다.
<곡성>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차용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외 소재나 배경 등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나는 외국인이지만 시나리오만 읽고도 <곡성>의 이야기가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깊은 맥락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문화적 차이는 파트너를 믿고 진행한다. 그런 부분은 나홍진 감독과 이십세기폭스 코리아가 담당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해 아이반호 픽처스는 한국 투자·배급사 쇼박스, 할리우드 독립영화사 블룸하우스와 5년간 한국영화 6편 공동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영화 제작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역동적인 영화 시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처럼 영화를 많이 보는 나라도 없다. 한국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열정이 제작자 못지않게 높다. 국민 1인당 연간 영화 관람률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들었다. <비긴 어게인>(2014)과 <위플래시>(2015)는 한국에서 미국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제작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파트너들과 함께 한국에서 더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세 회사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쇼박스와 블룸하우스는 공동 기획과 제작을 맡을 예정이고, 아이반호가 제작비를 투자한다. 공포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블룸하우스는 다작을 하는 프로덕션인데, ‘블룸하우스 모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독자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블룸하우스는 초기 투자가 적은 대신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 때문에 투자 대비 박스오피스 수익이 대부분 성공적인 편이다. 블룸하우스는 영화와 함께 자신들의 이런 제작 모델을 수출하려고 한다. ‘블룸하우스’라는 브랜드가 붙으면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니까 승산이 있다.
쇼박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었나?
한국에서 영화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하니, 김호성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대표가 쇼박스의 유정훈 대표를 소개해줬다. 서로 목적과 방향성이 같아서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쇼박스는 6~7편의 스릴러·공포영화를 제작할 계획이 있었다.
동시에 여러 파트너와 일을 한다. 아이반호 픽처스의 스타일인가?
우리는 쇼박스하고 공포영화를 함께 만들지만 유니버설 포커스와도 공동 제작을 하고 라이온스 게이트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영화마다 맞는 제작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한 브랜드하고만 일하지 않고 작품에 맞는 회사를 찾는다. 얼마 전에는 CJ E&M과 한국인 이성우 씨의 이야기를 함께 영화화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의 평범한 회사원 이성우 씨가 평소 열렬한 팬이었던 메이저리그 야구팀 캔자스시티 로열즈의 초청으로 경기장을 방문해 기적을 만든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쇼박스, 블룸하우스와의 협업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 중인가?
최근 네이버를 통해 작품 공모를 했고 거기에서 뽑힌 몇 작품을 검토 중이다. 우리가 내세운 ‘블룸하우스 모델’에 맞는, 대형 제작사들의 영화와는 다른 저예산 호러·스릴러 영화가 될 것이다.
제작에 참여한 아시아 영화들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거나 북미 개봉할 예정인가?
아이반호 픽처스의 첫 번째 주요 목표는 한국 시장에 맞는,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리메이크와 해외 개봉을 염두에 두고는 있다. 우리가 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 수출이나 리메이크가 가능하다. 반대로 우리가 참여한 해외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을 한국으로 가져와 한국영화로 제작할 수도 있다. 여러 방향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주된 목표는 아니지만 좋은 기회를 만들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에 참여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최근 주목하고 있는 영화인이 있나?
워낙 유능한 감독들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말하기가 어렵다.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과 일하는 것도 좋지만 쇼박스와의 협업을 통해 젊고 유능한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