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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발의 꿈 (2010) 더보기..
    타이틀 맨발의 꿈
    A Barefoot Dream
    참여국 한국
    동티모르, 일본
    개봉일 2010년 6월 24일
    촬영기간 2009년 11월 1일~2009년 12월 22일
    개봉시 심의등급상
    국가분류
    한국
    제작사 캠프B,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투자사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배급사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프로듀서 류보현, 김준종
    감독 김태균
    작가 김광훈(각본)
    주연배우 박희순, 고창석
    조연배우 Francisco Frenque Amaral Borges Martins Varela(라모스 역), Fernando Almeida Do Carmo Bucar Pinto(모따비오 역), Filomeno Junior Da Costa (뚜아 역), Marlina Simoes(조세핀 역), Kei Shimizu(도죠 역), Yousif Abdelhamid Ibrahahim Gibreel(요셉 역)

    원작 김신환(원안)
    주요 프로덕션
    스태프
    정한철(촬영), 김준석(음악), 신민경(편집), 김현옥(미술), 후지모토 신스케(연출부)
    Susumu Tachikake(그립/장비), Kenji Yamanaka(그립/장비)
    주요 포스트 프로덕션
    스태프 및 업체
    모팩스튜디오(시각효과)
    로케이션 동티모르, 일본 히로시마
    투자 지분 쇼박스 100%
    지원기관 및 지원금액 외교통상부
    박스오피스 338,080명
    해외배급현황 인도네시아 (2010년 10월 1일 개봉)
  • 1) 기획단계 및 파이낸싱
     
    6개월 동안 영화를 기획을 하면서 해외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힘들게 알아낸 현지에 대한 정보들이 영화가 끝나면 없어져버려 안타깝다. 공동제작 사례를 백서 형태로 시나리오집처럼 만들었으면 좋겠다. 공동제작 실무에 관련된 근거 자료가 필요하다.

    영화의 기획은 김태균 감독이 시작했다. 2004년 ‘시사매거진 2580’라는 TV프로그램에서  동티모르가 나온 적이 있다. 동티모르에 한국의 상록수 부대가 파견되어 치안유지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김신환 감독이 있었고 그가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을 이끌고 일본 축구대회에 나가 우승을 했다. 그로 인해 김신환 감독이 한국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 제작팀이 동티모르에 갔다. 처음에는 그저 개인적인 관심에서 김신환 감독과 함께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사주려 했다. 영화계 내에 기독교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달에 30~40만원을 모아서 동티모르 유소년축구학교에 축구공을 기부했다. 그 이후에 김태균 감독이 동티모르에 갔다. 그때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티모르의 현실들을 보았고 이것을 영화화하면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학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월드컵이라 시기적으로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2008년부터 기획을 시작을 했다. 2009년도에 촬영해서 2010년에 개봉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영화의 내용으로는 국내에서 투자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 쪽 투자를 물색했다. 김태균 감독도 일본에서 <피안도>를 찍고 있는 상황이라 일본 쪽 자금도 알아봤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개발도상국 관련 영화니깐  개인 투자나 기부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자금을 모으질 못했다. 그 와중에 쇼박스가 투자자로 들어왔다. 쇼박스는 휴머니티 영화가 잘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쇼박스가 제작비의 전액을 투자하면서 쇼박스와 공동제작을 하게 되었다.
     
     
    2) 제작과정
     
    동티모르 로케이션의 어려움이 많았다. 동티모르와 가까운 인도네시아만 해도 영화를 많이 찍는다. 하지만 동티모르는 영화 인프라가 전혀 없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연기자 문제였다. 현지의 아역 배우를 찾는 게 힘들었다. 동티모르가 배경이지만 유사한 환경인 인도네시아에서 찍을 수도 있었지만 전적으로 동티모르에서만 가능한 것도 있었다. 바로 UN군이 주둔하고 있는 전시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촬영을 하면 동티모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 있었다. 실제로 동티모르 정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동티모르는 촬영 허가나 촬영을 위한 절차가 없다. 통티모르는 정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UN법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 동티모르로 컨테이너 박스 7개를 보냈고 냉동 박스, 밥차도 보냈다. 동티모르의 한국대사관으로 물품을 보냈다. 비자가 문제였다. 한국과 동티모르가 비자 업무체결이 안 돼 있었다. 우리가 준비할 때는 주한 동티모르 대사가 없었다. 준비하는 중에 주한 동티모르 대사가 생겼다. 그래서 비자를 30일 여행자비자를 받았다. 장기비자가 필요했는데 동티모르 정부에서는 그냥 연장라고 했다. 동티모르에 워킹비자가 없다. 그래서 영화 촬영을 위해서는 사람도 만나고 취재도 해야 해서 기자비자를 신청했다. 그런데 동티모르에 도착했을 때까지 기자비자는 안 나왔다. 동티모르 정부는 그냥 여행자비자를 연장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동티모르에서 아이 납치 사건이 있었는지 외국 사람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현지인들의 경계심이 있었다. 배우 오디션을 하면 0.5불씩 50센트씩 온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경찰이 와서 비자를 보자고 했다. 동티모르 정부에서는 문제가 되니 출국할 때 벌금을  20달러씩 내라고 했다. 신생국이라 정해진 룰도 없고 불필요한 서류도 작성해야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 어떤 스탭이 기자비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범죄증명도 해야 했다. UN이 동티모르의 경찰권이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동티모르 총리를 만나기도 어려웠다. 한국에 대한 동티모르의 인식이 안 좋았다. 한국인은 사기꾼이란 인식이 있었다. 영화촬영을 한다고 하니깐 동티모르에서는 사기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영화촬영을 진행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영화촬영을 위한 영상을 준비해서 동티모르 정부 관계자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총리가 영화 촬영에 대해 격려해주었다.

    영화 등장인물이 외교부 직원인 덕분에 한국 외교부의 도움을 받았다. 외교부에서 시사회도 했다. 외교부가 UN과의 업무를 지원해 주었다. 외교 영향력이 곧 국력인데 일본, 중국은 동티모르에 다리를 건설해 주는 등의 지원을 해주니 동티모르에서의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그 나라에 해준 게 없었다.

    장비는 한국에서 다 가지고 갔다. 필름은 현상도 못하니깐 레드원 카메라 가지고 갔다. 연출부는 한 달 반 전에, 제작부는 촬영 한 달 전에 동티모르로 갔다. 내가 마지막에 나머지 스탭을 데리고 동티모르로 들어갔다.

    시나리오 작업 할 때 라이트 문제 때문에 야간 장면을 줄이려고 했다. 장비를 빌리려고 동티모르 방송국에 가보니 한국의 대학 방송국보다 못했다. 그래서 장비를 한국에서 미리 배로 보냈다. 이동차는 콘테이너로 한 달 전에 동티모르로 보냈다. 가능하면 최소로 장비를 가져가려했다. 레드원 카메라를 두 대 가져갔다. 렌즈는 한 박스 가져갔다. 그리고 마크2를 가져갔다. 마크2로 관중장면 같은 인서트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마크2와 레드원과 섞으서 촬영을 하니깐 화질에서 표시가 났다. 스틸카메라에 카메라렌즈를 달아 찍으니깐 화면이 튀었다. 렌즈문제인 것 같았다.

    동티모르에서 레드원으로 데이씬 찍을 때 실외의 광 차이가 나서 발란스가 날아가 버렸다. 밖의 광이 강하고 실내에 라이트가 부족해서였다. 레드가 가진 한계가 있었다. 움직일 때 떨림이라든지 발란스를 날려버리는 것 등이 문제였지만 촬영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2008년 6월로 동티모르의 치안은 정리가 되었다. 동티모르 무장 세력이 대통령을 피습했었는데 그 때 무장 세력의  우두머리가 죽었다. 그러면서 무장 세력이 와해되었다. 치안은 괜찮다.

    날씨 때문에 힘들었다. 오전 9시가 가장 힘들다. 오전 7시부터 촬영을 했다. 동티모르는 계절도 우기와 건기만 있다. 12월에 건기에서 우기로 바뀐다. 우리가 촬영할 때는 비가 안오다가 촬영이 끝나니깐 우기가 왔다. 오전 9시에서 10시의 아침 햇살이 매우 따갑다. 일주일도 안 되어서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운전수, 운송, 통역에서 현지 스탭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 교민들로 부터 통역과 미술지원을 받았다. 영어가 가능한 현지 스탭들로부터는 제작 지원을 받았다. 동티모르에 한국 스탭은 33명 정도 갔다. 현지 로케이션에서 4~5억 원 정도 썼다. 동티모르는 외국 촬영팀이 와서 로케이션 비용을 쓰고 간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우리가 필요하니깐 동티모르에서 와서 촬영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얻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순제작비는 27억 원 정도이다. 그 중 인건비가 30%정도였다. 식대, 인력비, 관세는 별로 안 들었다. 운송비용이 4천만 원 정도 들었다.  
    동티모르는 물가가 비싸다. 생필품이 거의 수입이고 관세가 높아서 가격이 비싸다. 반면 인건비는 저렴하다. 차량 값은 비싸다. 숙박비도 비싸다. 숙박할 수 있는 호텔도 한정되어있어서 방값이 비싸다. 먹는 것도 비싸다. 물가가 UN물가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식료품을 안 사먹는다. 촬영 때 일인당 식대가 4~5천 원 정도 들었다. 식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로케이션을 했으면 동티모르의 1/3 비용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아역 배우는 오디션으로 뽑았다. 동티모르에 축구학교가 있었다. 학교운동장에 가서 오디션을 하겠다고 방송을 했다. 하지만 오디션이 뭔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오디션 플렌카드 붙이기도 했다. 축구학교 아이들이 오디션에 열심히 나와 주었다. 오디션에 오면 항상 1달러나 50센트씩 주었다. 그렇게 출석 체크를 했다. 출연료라기보다는 교통비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지급했다. 오디션에 온 아이들에게 시나리오 훈련도 시켰다. 그렇게 해서 아역배우를 뽑았다.

    우리가 21명의 아역배우를 뽑았는데 그 중 19명이 축구학교 아이들이었다. 주요배우 몇 명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이시아에서 뽑으려고 했는데 동티모르 아이들이 잘해서 그 아이들로만 배역을 구성하기로 했다.

    동티모르에 비행기로 가는 방법은 발리와 인도네시아를 통해 들어가는 방법과 싱가포르를 통해서 들어가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영화 주인공인 라모스의 형 역할을 맡은 배우는 한국에서 데리고 갔다. 그 배우는 동티모르 현지인이 아니라 수단 대사의 아들이다. 주인공 라모스는 실제로 운동선수이다.

    연기자를 현지에서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영화에 600명 정도의 엑스트라가 나온다. 현지 인건비가 싸니깐 1달러부터 10달러까지 주고 엑스트라를 모집했다. 대학교에서도 모았고 한국과 연관된 사람들이 엑스트라를 연결해 주었다. 현지 엑스트라는 촬영을 하다가도 갑자기 없어진다. 엑스트라 관리가 힘들었다. 힘든 거 먼저 찍었다. 열대지방이라 사람들이 한국에 비하면 행동이 느린 편이다.

    동티모르는 4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포르투칼어, 떼뚬어, 영어,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한다. 떼뚬어를 제일 많이 사용한다. 방송은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한다. 동티모르에는 인도네시아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인도네시아 통역, 떼뚬어 통역을 쓰고, 영어로도 이야기하고, 여러 언어가 촬영현장에 섞여있었다. 통역이 있어서 의사소통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역배우들도 아이들이 눈치로 스탭들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촬영기간은 11월 1일 날 찍어서 12월 22일에 끝났다. 일본에서는 7일 찍었다.

    일본의 시네콰논이 영화를 수입하기로 했다. 그려면서 히로시마에서 촬영을 해달라는 히로시마시의 요청을 받았다. 내막을 알고 보니 히로시마 시장과 동티모르 대통령이 친구였다. NGO 때 만나 친구가 된 것이다. 또한 동티모르 일본대사가 히로시마 시장과 친구이기도 했다. 동티모르 시사 때 일본 대사 옆에 내가 앉았는데 히로시마에서 로케이션을 한다고 했더니 히로시마 시장이 자신의 친구이기 때문에 히로시마 시장에게 미리 이야기해주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히로시마시의 지원을 받았다. 히로시마시에서도 홍보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히로시마시 전체를 찍어달라고 요청이 있었는데 시나리오 상 그러지는 못했다.

    영화에 히로시마 시민들이 엑스트라로 나온다. 일본은 엑스트라가 자원봉사자들이다. 일본 제작위원회에서 영화 홈페이지 만들고 광고를 해서 자원봉사자를 모은다. 엑스트라가 500명 정도 필요하다고 하면 600명 정도 모은다. 우리가 촬영할 때는 700명 정도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 출연료를 주는 게 아니라 선물이나 기념품을 줬다. 티셔츠를 주었고 식사제공도 했다. 촬영이 끝난 뒤에 경품 추첨도 했다. 배우들의 싸인이 들어간 축구공도 주었다.  아마 배용준이 출연했으면 더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제작부 중에 엑스트라를 전담하는 스탭이 있다. 일본인 제작부가 엑스트라를 동원해 주었다.

    동티모르에는 극장이 없어서 우리가 영화를 보여주었다. 해변에서 빔을 쏴서 DVD를 틀어 주었다. 현지 상권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어서 불법 DVD가 많다. 정부기관에서도 영화시사를 했다.
     
     
    3) 후반작업 및 배급
     
    P&A비용은 20억 원 정도 들었다. 국내 극장은 350개관 정도 잡았다. 해외 배급은 쇼박스에서 진행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했는데 흥행은 괜찮았다. 아시아 쪽은 축구를 너무 좋아한다. 홍콩은 K리그를 TV로 볼 정도이다. 동티모르도 축구를 좋아한다.
     
     
     
    인터뷰 대상자: 김준종 프로듀서(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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