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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미국과 중국 극장산업의 희비가 갈리다

2020.10.12
  • 작성자 박아녜스
  • 조회수763
반등에 성공한 중국, 끝없이 추락 중인 미국

 

중국 일간지 『신경보』에 따르면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이어진 국경절 연휴 동안 중국 박스오피스 수입은 39억 3천만 위안(약 6,720억 원), 관객 수는 9,942만 명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국경절 연휴 기간에 거둔 43억 8천만 위안, 1억 1,848만 명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중국의 건국기념일인 국경절은 매년 10월 1일로, 이 시기는 설 연휴인 춘절과 함께 중국 극장가 양대 대목으로 꼽힌다. 최근 ‘코로나19 종식’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처럼 극장가 또한 활기를 일찍 되찾고 있다. 반면 코로나19가 여전히 심각한 미국은 극장산업 역시 큰 어려움에 놓여 있다. 

 

국경절, 중국 극장산업 다시 깨우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후베이성 우한이 전면 봉쇄령에 들어간 것은 지난 1월 23일, 중국 춘절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다음 날인 24일부터 중국 각지의 극장은 영업을 중단했고, 7월 20일 일부 극장이 영업을 재개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회복은 빨랐다. 극장 재개관 한 달여 뒤인 8월 21일 개봉한 <팔백(八佰)>은 30억 위안이 넘는 놀라운 흥행 기록을 쓰며 10월 10일 기준, 윌 스미스 주연의 <나쁜 녀석들: 포에버>를 제치고 올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다. 

 

항일 애국주의 영화인 <팔백>의 흥행에 힘을 받은 중국 극장가는 사실상 올해 첫 대목인 국경절 특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연휴 기간 극장 재개관율은 97.3%로 거의 대부분의 극장이 문을 열었고, 정부에서도 판매 좌석 수를 기존 50%에서 75%로 확대해 더 많은 관람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게다가 성룡 주연의 액션 영화 <급선봉(急先锋)>을 비롯해 올 1월 춘절 개봉을 목표로 삼았던 화제작 대부분이 국경절 연휴를 개봉일로 택하면서 관객의 기대치 또한 한껏 높아졌다. 국경절 연휴 기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은 <나와 나의 고향(我和我的家鄉)>으로 18억 7천만 위안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개봉한 <나와 나의 조국(我和我的祖国)>의 후속작인 이 영화는 중국 동서남북 다섯 지역에서 벌어지는 고향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 영화다. 2위는 명나라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 속 ‘강태공’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강자아(姜子牙)>, 3위는 중국 여자 배구단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진가신 감독의 <둬관(奪冠)>이 차지했다. 

 

이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다름 아닌 ‘애국’이다. <나와 나의 고향>은 중국 공산당의 이념을 주요하게 다루는 주선율 영화인 <나와 나의 조국>의 속편이며, <강자아>와 <둬관>은 역사와 현대사에서 소재를 가져와 중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원래 중국 영화에서 애국은 중요한 흥행 코드 중 하나지만 올해 국경절에는 그 기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항일전쟁을 소재로 한 <팔백>이 한 달여 일 이상 흥행을 해왔음에도 국경절 연휴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올라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애국주의 열풍을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중국인들의‘자부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여전하지만 중국은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생각, 이러한 전 국민적 자부심이 애국주의 영화 소비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지난 9월부터 정부 차원에서 영화산업 부흥을 위해 영화 티켓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관객 확대 운동에도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임시 폐쇄의 기로에 선 미국 극장산업

 

 

상영관 입장 전 체온 확인, 마스크 착용 필수, 식음료 섭취 불가, 좌석 수 75% 제한이라는 한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 중국 극장가와 달리 미국 극장가 상황은 암울하다. 특히 국경절 연휴 기간이었던 10월 4일, 세계 2위 극장 체인 리걸시네마의 소유주인 시네월드가 미국과 영국 전역에서 극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시네월드는 전 세계 11개국에 800여 개의 영화관을 운영 중인데, 만약 임시 폐쇄 결정이 실현된다면 540여 개 극장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네월드의 임시 폐쇄 발표 다음 날, 그 후폭풍으로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의 주가도 11%나 폭락했다. 

 

시네월드는 올해 상반기 수익이 67%가량 줄어 약 16억 달러(약 1조 8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임시 폐쇄를 고민하게 된 결정타가 된 사건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개봉일을 올 11월에서 내년 4월로 연기한 것이다. 시네월드를 비롯한 미국 대부분의 극장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 개봉에 맞춘 8월 31일에 재개관을 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랫동안 극장 나들이를 꿈꿨던 이들이 개봉 첫 주 반짝 극장을 찾았으나, 이것이 전부였다. 극장 관객 수가 극장주들의 예상을 크게 밑돌았던 것은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지 못한 탓이 가장 크지만, 극장 라인업이 부실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화제작인 <테넷> 하나로 관객 수 반등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007 노 타임 투 다이>까지 개봉을 늦추자 극장은 더욱 곤란해졌다. 

 

문제는 배급사와 극장의 입장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일례로 전미 극장주 협의회(NATO․National Association of Theater Owners)의 존 피션 회장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개봉을 미룬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극장을 영구적으로 폐쇄하기로 한 정책을 꼽았는데, 이처럼 배급사는 극장의 운영 불가능성을 개봉 연기의 이유로 말하고 극장은 라인업 부재가 극장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대작 <듄>도 내년 10월로 개봉일을 조정하면서 현재 기준, 올해 개봉이 예정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워너브러더스의 <원더우먼 1984>가 거의 유일하다. 물론 <원더우먼 1984> 역시 이미 네 차례나 개봉일을 바꾼 만큼 크리스마스 개봉을 목표로 한 이번 계획도 변동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 라인업의 부재 모두 극장산업이 우려하는 지점이지만 영화 관람 패턴의 근본적인 변화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 경험과 함께 극장이 오랜 기간 문을 닫으면서 상당수의 관객은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으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또한 월트디즈니의 경우에는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를 아예 ‘첫 번째 플랫폼’으로 선택하는 등 배급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10월 10일 자 『버라이어티』 등의 외신에 따르면, 디즈니는 <뮬란>에 이어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역시 북미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뮬란>이 29.99달러를 별도 지불해야 했던 것과 달리 <소울>의 경우 기존 구독료에서 추가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소울>은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가 공동 연출한 픽사의 기대작이다. 

 

기존 극장 사업주들이 갖는 또 다른 불안은 아마존이나 넷플릭스가 아예 극장을 인수해 해당 산업계로 진출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아주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지난 8월 미국 법무부가 배급과 상영의 겸업을 금지하는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을 폐지했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일으킨 날갯짓이 전 세계 영화산업, 특히 극장산업의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