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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창작 집단 겸 제작사 운영하는 유영아 작가

2020.02.03
  • 작성자 김수빈
  • 조회수5138

“작가들이 서로 응원하고 기대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유영아 작가가 이끄는 스토리 회사 글뫼가 영화 <휴가>를 통해 제작에도 나선다. <휴가>는 하늘로 떠난 엄마가 사흘간의 휴가를 받아 딸의 곁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영화로, 1월 말 현재 한창 촬영 중이다. 영화 <웨딩드레스>로 입봉해 드라마 <남자친구>와 영화 <82년생 김지영>까지, 매체를 넘나들며 따뜻한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온 유영아 작가에게 영화 <휴가> 제작에 얽힌 이야기와 글뫼의 비전에 대해 들었다.

 

글뫼의 설립 계기를 알고 싶다. ‘시나리오 창작집단’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작가들이 함께 하는 회사로 방향을 잡은 건 지난 해 초였다. 오펜이나 지금하고 있는 기획개발전문역량강화지원센터 S#1(씬원) 같은 작가 양성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미 엄청난 포텐셜을 가진 신인작가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작가들은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외롭기도 하고, 시나리오는 누군가의 의견을 들으면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혼자 있으면 제작사를 만났을 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분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다. 나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고료로만 생활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신인작가들이 그 시간을 단축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모여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지금도 뭘 쓰면 이 방향이 맞는지 불안하다. 이런 걸 선배나 업력이 많은 분이 가이드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신인 작가들이 좀 수월하게,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작가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다만 우리 회사는 직접 제작을 하지 않으면 (시나리오가) 잘 활용되는 시스템은 아니다. 우리가 글을 만들어 타 제작사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제작하지 않는 상황에선 베네핏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휴가>의 제작과 맞물렸다.

 

자연스럽게 제작을 시작하게 됐나?

그렇다. <휴가> 시나리오는 제작을 직접 하겠다고 마음먹고 쓴 건 아니다. 나는 제작에 손을 대는 것에 두려움도 있고, 하나나 잘 하자는 생각에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휴가> 시나리오는 쓰고 나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윤홍 대표는 제작에 대해 예전부터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생각해왔던 것 같다. 정대표가 우리가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그때 각오는, 능력이 모자라 제작이 무산돼서 이 글이 사용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말자는 것,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지금처럼 배우, 투자자들이 도와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또 정윤홍 대표가 해외 영화제에서 만난 파트너들에게 한국에서 리메이크할 만한 영화를 소개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사오게 됐다. 글뫼 운영진에 작가가 있고 작가 크루를 갖고 있으니 콘텐츠가 시나리오로 만들어지는 것에 신뢰를 보내주는 회사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큰 회사가 아님에도 건강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그렇게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우리 규모에 맞게 알아보고 진행하고 있다. 그 작품들은 혼자 쓸 수 없다. 우리가 사온 영화와 맞을 것 같은 작가들께 프러포즈해서 같이 쓴다. 작가를 모셔오는 거다. 내가 잘 쓰지 못하는 장르라도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열리니 시선이 다양해진다. 같이 일하는 작가들의 시선도 다양하다 보니 회의를 하면서 원작을 놓고 다른 정서, 다른 주제로 접근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작가 회사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작품을 써왔는데 <휴가>를 직접 제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제작자, 연출자, 배우, 투자자의 시선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 처음 내가 말하고자 했던 정서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그게 나쁘다기보다 작가 입장에선 안타까운 거다. <휴가>는 하고 싶은 얘기가 분명하다. 평생 엄마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왜 가장 뜨거운 눈물은 항상 옆에 있지만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올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한데 이게 다르게 해석돼서 다른 영화로 나오면 많이 속상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대표님이 우리가 만들어 봐도 괜찮겠지 않겠냐고 해서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작 과정 중 모두가 내가 처음 정한 정서를 다 지켜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작가는 초반에 작업을 하고, 감독님께 연출 방향을 듣고 수정해 드리는 게 끝나면 개봉할 때 만난다. 하지만 <휴가> 제작을 하면서는 달라지거나 수정되는 과정을 뒤에서 보고 있으니 만들어진 다음에도 다른 이야기를 만난다는 낯섦은 덜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를 보면 각본으로만 참여한 작품과 다른 느낌이겠다.

연출팀이 일하는 걸 틈틈이 보면서 그동안 내가 각본이나 각색으로 참여한 영화들이 만들어져서 개봉되는 데 엄청난 정성이 들어갔다는 생각에 울컥했던 적이 있다. 지문이나 대사의 정서가 혹시라도 묻히지 않을까 싶어 모든 스태프와 각 분야 감독님들께서 카메라 각도 하나 집중해서 정하고 만들어나가는 걸 보며 혼자 숙연해졌다. 글을 더 밀도있게 써야겠다, 버리는 신 없이 써야겠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뫼를 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나?

마음이 부담스럽다. 선한 부담이라면 선한 부담이다. 작가들은 다들 열심히 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머릿속에서 구상해서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쓰고 있다. 기쁜 상상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쓰고 있을 텐데 내가 모자라서 이게 매체로 만들어져 송출되지 못하면 이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어떡하나 하는 부담감이 크다. 모든 제작자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작가니까 조금 더 그 부분에서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대본이 나오면 더 신랄하게 본다. 내 글보다 더 치열하게 작가들의 글을 보게 된다. 일단 한번 써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작품이 투자사나 배우들을 설득할 만큼 상업적 가치가 있는지, 작품으로 만들어질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얘기한다. 모자란 내가 보기에도 약간 석연치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글뫼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이나 키워드를 꼽자면?

처음 ‘글뫼’라는 이름을 주셨던 분이 산 같은 글을 쓰자고 해서 이름을 짓게 됐다. 산을 타는 마음은 다 다르다. 산에는 험한 동물도 있고 귀여운 동물도 있고, 위험도 있고 스릴도 있고 상쾌함도 있다. 그런 다양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좀 내려놓고 가는 것처럼 작품을 보고 속상한 마음, 의문이나 분노 같은 걸 한 짐 정도 내려놓는 글이나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처음엔 휴먼 장르나 착한 영화만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한 없이 어둡고, 보는 데 마음 불편한 영화도 관심을 갖고 있다. 자극적이기만 하고 남는 게 없는 작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도가니>, <변호인>, <미쓰백>같은 작품처럼 속상해서 보기 싫고 보면 너무 힘들지만 보고 나면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다. 며칠 동안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더라도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에선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를 다룬다면 좀 어렵고 힘든 영화더라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요즘엔 남들이 얘기하는 하드한 주제나 이야기에도 시선을 주고 있다.

 

글뫼를 어떤 집단으로 키워나가고 싶나? 

지금보다 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작업실이 없으니 카페에 가서 일했다. 24시 카페 어디가 조용하고 주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빠삭했다. 내가 여유가 돼서 작업실을 갖게 되니, 자다가도 잠이 안 오면 나와서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좋더라. 그래서 사무실 크기를 키우고, 탕비실도 마련해뒀다. 원하는 시간에 와서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사용하고 글을 썼으면 하는 이유에서다. 글뫼에 소속이 돼 있건 아니건 간에 작가들이 글 쓰다 막혔을 때, 방향이 흔들리거나 심적으로 마음이 외로울 때 방앗간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또 ‘제작을 시작했으니 제작할 만한 것을 만들자.’ 이러기 시작하면 부담이 많이 된다. 함께 얘기하고 놀다가 재밌는 걸 만나고, 제작할 수 있게 되면 하나씩 하고 싶다. ‘그 영화 봤어? 그런 거 한국에 갖고 오면 골 때릴 거 같지 않아?’ 하면서 얘기 나누다가 시작하는 식이다. 우연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친밀감, 친숙함 속에서 꾸준히 작품을 하고 싶다. 신인 작가들이 여기서 입봉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감독님들이 운영하는, 신인 감독들의 큰 나무 같은 제작사에서 감독들이 서로 얘기하고 응원하는 걸 옆에서 봤는데, 글뫼는 작가들이 서로 응원해주고 와서 호소도 하고 기대기도 하는 회사였음 좋겠다.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