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접속 통계
  • 홈
  • 뉴스/리포트
  • 뉴스
  • 메일쓰기
  • 페이스북
  • 트위터

뉴스

국내외 판타지영화제 경험한 <낙인>의 배우 겸 프로듀서 양지

2020.08.17
  • 작성자 김수빈
  • 조회수1901
“해외 영화인들과 동네를 산책하는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다”

 

 

영화 <낙인>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여성이 어떤 낙인으로 한순간에 추락하면서 벌어지는 SF 장르물이다. 이 영화는 제40회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서 ‘국제판타지-심사위원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이정섭 감독, 주연 배우 양지를 포함해 <낙인> 팀은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열린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세계 영화인들과 교류했다. 영화는 얼마 전 막을 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부천에서 배우 양지를 만나 두 장르 영화제에 참석한 소감과 더불어 필름메이커로서의 다채로운 경험에 대해 들어보았다.

 

영화 <낙인>에서 주연 배우와 더불어 기획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다. 배우와 프로듀서를 함께 맡는 것은 특이한 케이스다. 

세상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배우와 프로듀서의 경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배우로 영화 일을 시작했지만, 조감독 역할을 맡으며 현장에서 배우고 있다. 각 역할이 꼭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보면 배우들이 직접 붐을 들고 슬레이트를 치다가 연기를 한다. 여러 역할을 맡아보니 그만큼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지더라.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예민하게 현장 작업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기획 프로듀서로서 어떤 일을 했나.

잡다한 일은 다 했다. 오디션을 함께 진행하는 것부터 시작해 신 분석을 많이 했다. 누구보다 이 작품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로케이션 헌팅도 하고, 소품도 직접 만들고, 협찬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고. 한 편의 극단처럼 움직였던 것 같다. 장태영이라는 배우도 기획 프로듀서를 함께 맡았다. 촬영 전까지 기획 프로듀서로 열심히 영화를 준비했고, 총 13회차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연기에 집중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선 후반작업 프로듀서를 맡았다. 우리 영화 스태프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사운드와 음악 작업은 LA, CG는 캐나다, 편집은 미국에서 진행했다. 뉴욕에서 편집을 하다가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지막 신을 뉴욕에서 촬영했다.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연기에만 전념하지 않는다는 게 힘들진 않았나?

연기만 했을 땐 내 것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낙인>의 기획 프로듀서, 그리고 지금 준비 중인 영화 <죽여 마땅한 사람들> 조감독 역할을 하며 작품을 관통하는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낙인> 후반작업 프로듀서를 맡으며 모든 촬영 푸티지의 오케이 컷과 NG 컷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연기한 컷을 보며 많이 반성했다. 그동안 왜 내 것만 봤을까 싶더라. 후반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깨졌다. 왜 이런 장면이 편집이 되는지,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등 내 연기를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내 연기에 대해 좌절도 하고. 좀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작업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선 숲을 보고 싶다고, 먼저 조감독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말씀드렸다. 40회차 촬영의 조감독이자 기획 프로듀서 역할을 맡아 3개국을 다녀왔다. 영화에선 짧은 조단역으로 나오지만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많이 길렀다.

 

 

어떻게 <낙인>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8년 전 <목욕의 신>이라는 영화의 오디션을 보면서 감독님과 처음 만났다. 이후 연기자로 일하며 어떤 시련이 있든 꿋꿋이 이겨냈다. 계속 하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러다 감독님께 <낙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님이 2014~15년부터 기획한 영화다. 거대 자본이 아니라서 신인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주고, 할 수 있는 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감독님과 함께 기획에 참여했다. 첫 번째 목표가 신인들을 캐스팅하는 것. 두 번째는 SF 장르일 것. 세 번째는 여성 주도적 캐릭터가 나오면서 남녀 성비가 동등할 것. 이렇게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다 보니 백조경 캐릭터를 맡게 되었다.

 

기획 프로듀서 일을 하며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겠다.

그렇다. 오랜 시간 배우만 꿈꿔왔다. 연기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오히려 잡생각이 많았다.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연기를 못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 <낙인>을 시작으로 연출부, 제작부를 경험하면서 배우는 영화의 한 요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고 싶다면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연출하고 싶은 꿈도, 물론 있다. 할리우드에선 배우가 직접 기획도 하고 각본도 쓰고 제작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나도 지금은 부족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연출도) 해보는 게 꿈이다.

 

이 영화를 통해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장르영화제, 판타스포르토에도 초청 받았다.

축제 같은 영화제였다. 유럽에서 코로나가 돌기 직전인 3월 초에 참석했다. 우리가 유일한 아시아 참가자였던 것 같다. 가니까 정말 환대해줬다. 마리오 도민스키 집행위원장이 계속 우리 팀을 언급해주셨다. ‘판타스포르토 40주년을 맞아 바이러스를 뚫고 온 한국팀에게 감동했다’며. 영화제의 관객들, 세계 각지의 감독, 배우, 프로듀서 분들이 영화에 환호를 해주셔서 TV 속에서 보던 칸의 분위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경험을 했다.

 

 


영화제 출품 과정부터 참여했나?

해외세일즈 회사가 정해지기 전부터 영화진흥위원회에 연락해 출품 과정에 대해 문의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러 가지 출품 사이트에 직접 출품 신청을 했다. 가편집본으로 보내기도 하고. 기획 프로듀서 일이 처음이라 많이 부딪히면서 배웠다. 판타스포르토는 내부에서 출품했고 영화를 좋게 봐주셔서 초청받을 수 있었다.

 

 

출품 과정부터 참여했던 만큼 초청 소식이 더 반가웠겠다.

아침에 소식을 접하고 잠이 확 달아났다. 하루 종일 축제처럼 지냈다. 처음부터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한국으로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한 영화라서 더욱 그랬다. SF 비주류, B급 정서, 여성 서사, 신인 등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만큼 판타스포르토에서 좋은 성과를 얻게 되어 기뻤다.

 

영화제에서 어떤 일정을 소화했나?

영화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팀원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했다. 그 시기에 지원사업이 너무 많아서 각 진흥원의 지원사업을 포르투갈에서 신청했다. 시차가 달라 아침, 오후까지는 호텔 로비에서 계속 일했다. 저녁부터는 각국의 감독님들과 영화를 보러 다녔다. 저녁마다 모여 각자 본 영화를 얘기하고 각 국가의 프로젝트나 영화 산업 상황을 교류했다. 그러다 <낙인>을 좋게 봐준 아일랜드 카쉘 호건 감독님을 만났다. 그 분이 우리 영화를 보고 빠졌다며 본인이 기획하는 영화의 각본을 이정섭 감독님이 써주고 배우는 양지가 해주길 바란다고 해서 첫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남자주인공은 HBO 드라마 <체르노빌>의 주인공인 자렛 해리스와 조율 단계에 있다. 현재 두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단계다. 빠르면 가을부터 아일랜드로 넘어가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상황을 좀 지켜보고 있다. 두 감독님 모두 결단력이 빠르다. 지금은 영화의 형태로 제작을 생각하고 있고, 아시아 여성의 인종차별에 대한 얘기다. 현재 상황과 잘 맞을 것 같다. 이정섭 감독님과 공동 제작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해외 영화인과 교류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도 있었나?

그렇다. 판타스포르토영화제가 특이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동네를 함께 산책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제 부집행위원장과 세계 각국 영화인이 모여 아침 9시부터 1시까지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함께 조식도 먹고 관광명소도 다니면서 역사 얘기도 듣고 요트도 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감독과 프로듀서를 만났다. 뜻 깊은 시간이었다. 밤에는 모든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같이 춤추고 놀았다. 굉장히 열려 있는 영화제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 만난 영화인들과 지금도 연락을 한다. 이번에 부천에 초대된 분도 있어 다시 연락을 나눴다.

 

 

판타스포르토에 대해 갖는 인상은?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임에도 침잠되어 있지 않았다. 재밌는 기억만 있다. 폐막식이 저녁에 열렸는데 행사 전부터 다른 감독들과 와인을 마셨다. 첫 영화제부터 이렇게 활기찬 영화제, 유럽 최고의 판타지 영화제를 경험하게 돼 감동이었다.


카쉘 홀건 감독과의 공동 제작 외에 네트워크 면에서 성과가 있었나? 

눈에 띄는 성과라면 <낙인>은 영화제에서 특별 언급상을 받은 것, 해외 관계자에게 한국영화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와이파이가 잘 되는 로비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새벽 3, 4시까지 우리랑 술을 먹는데 아침에 보면 조식 먹고 일을 하고 있다고. 저것이 한국 영화의 힘이라고. 이러니까 <기생충>이 나온 거라고. 그러면서 본인들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치열하게 임할 것이라며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어떤 일정을 소화했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체크했다. 판타스포르토에선 관객의 마음으로 봤다. 근데 이번에는 우리가 아는 멀티플렉스에서 영화가 걸린다는 생각에 굉장히 긴장되더라. 좀 더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부분이 계속 보이더라. 현장 생각도 나고, 2~300번 넘게 영화를 본 것 같은데 매번 울컥하는 게 다르다. 영화 출연진들 생각도 많이 나고.

 

 

 

세계적인 장르 영화제 두 곳을 경험했는데 어떤 차이를 느꼈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시기의 차이 말고 큰 차이를 못 느꼈다. 팬들이 열광적이다.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도 느꼈다. 그것 또한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시국에 어렵게 행사를 결정하고 진행해나가는 부천 스태프들이 대단한 것 같다. 

 

영진위 국제팀은 국내 영화인들의 영화제 참가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 사업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해외 영화제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제 하나 지원할 때마다 돈이 많이 든다. 여러 영화제에 출품하면 그 금액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걸 조금씩 절감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영진위의 지원이 늘어나서 국내 다양성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면 좋겠다. 한국에서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면 이런 실험영화가 해외진출을 하는 데에도 더 좋을 것이다. 해외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지원이 더 필요하다. 

 

연기로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6살 때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 나가 1등상을 받았다. 그 후로 광고 작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집이 부산인데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지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그만 뒀다. 그 이후로는 하고 싶은 피아노도 치고 예술 쪽으로 많이 경험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꿈을 생각하다 보니 어릴 때 남은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8,9년 전 오디션에 참여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