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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을 지키다, 조국으로 돌아오다
  • 김현정  ( 2016.08.17 )  l  조회수 : 1365
  •  한국영화 성공의 새로운 열쇠, 애국심 마케팅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엇갈린 평점 분포를 보이고 있다. 8월 17일 기준 관객 평점은 8.58이고 평론가 평점은 3.41이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시사회가 끝난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평단과 언론의 평은 가혹했다. “시대착오적인 반공영화”, “2시간짜리 대한 뉴스”라는 조롱 섞인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제작비 170억 원을 투입하고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까지 캐스팅한 이 영화의 흥행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7월 27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은 8월 중순인 현재 관객 600만 명을 넘어섰다. 평단과 관객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 결과가 <인천상륙작전>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은 개봉 한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016년 전체 한국 박스오피스 5위에 올라 있다.
     
    이 정도면 어딘가 낯이 익다 싶기도 하다. <인천상륙작전>을 둘러싼 평단과 언론, 관객의 엇갈린 반응, 그리고 흥행 성공은 <디워>가 개봉한 2007년 8월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평단 내부에서도 반응이 엇갈리기는 했지만 대체로 혹평을 받았던 <디워>는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통계 8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두 영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다.
     
    영웅을 숭배하고 무명용사를 기리다
     
     
    <디워>는 전형적인 괴수영화였지만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한국의 기술력으로 세계를 재패했다는 인식이었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민족의 노래로 일컬어지는 아리랑이 울려 퍼지면서 한국의 영화 기술이 지금처럼 선진적이지는 못했던 시절, 한국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디워>의 광고 카피 중에는 “2007년 8월 대한민국 SF의 새로운 신화를 목격하라”라는 문장도 있었다. 일종의 애국심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애국심 마케팅이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 실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다수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특히 그 영화들은 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블록버스터의 외양을 함께 가지고 있었으므로 상업적으로도 파급력이 컸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크게 흥행한 영화로 당연히 <명량>을 꼽을 수 있다. 한국영화 역사상 흥행 1위에 오른 영화다. 이순신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유년 시절부터 모두 배우는 성웅(聖雄)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 외세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은 이 영화는 영화 자체의 규모나 볼거리 등을 떠나서 그 애국적 영웅의 가장 중요한 승리와 헌신의 순간을 목격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관객을 자극했다.
     
    그 결과 <명량>은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이룬 영화가 됐다. 영화가 흥행하자 이순신의 리더십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는 식의, 일종의 영웅 중심의 리더십 논리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 점 역시 영웅 중심 애국주의와 연관이 없진 않을 것이다.  
     
    <연평해전>도 <명량>과 유사한 전략을 펼쳤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보다 가까운 현대, 보다 친밀하게 느껴지는 젊은 병사들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에는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하게 스러져간 무명의 병사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봉 전에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이 영화는 500만 관객을 넘어서는 성공적인 흥행 결과를 얻었다.
     
    관객 분포도 주목할 만했다. 2015년 8월에 발표된 <맥스무비> 설문 조사에 의하면 <연평해전> 관객은 20대가 28%, 30대가 24%, 40대가 21%, 40대가 16%로 청년과 중년층에 고르게 퍼져 있었다. 이는 애국심 마케팅이 한국전쟁을 겪었거나 비교적 가까운 과거로 여기고 있는 중·노년층에 유효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결과다. 이 설문 조사에 의하면 관객 중에서 자신을 중도라고 정의한 관객은 81%에 달했던 반면, 보수는 15%에 불과했다.
     
    2002년 6월 서해안 연평에서 있었던 북한과의 해전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흥행 요인은 무엇일까 질문했을 때, 많은 이가 다름 아닌 애국심을 자극한 결과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념적으로는 반공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남과 북의 무력 충돌을 직접 겪어본 적은 없는 30대 후반 이상 관객들과 달리, 현재 20대 관객들은 천안함 침몰을 비롯한 무력 사태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군 입대라는 현실적인 문제와도 엮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 때문에 <연평해전>은 군인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국심, 젊은 마음을 사로잡다
     
     
    <인천상륙작전> 역시 <명량>이나 <연평해전>과 유사한 성격을 지녔고 유사한 마케팅 포인트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의 분석은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실제 과정을 통해 픽션과는 다른 무게감의 감동을 전달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명량>과 비슷한 흥행 패턴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은 ‘반공영화’가 아니라 ‘안보영화’라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무엇이 다른 걸까. 반공이 공허한 이념에 불과하다면 안보는 우리 땅을 지켜야 한다는 실제적 당위와 닿아 있다. 억지스럽지 않으며 설득력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인천상륙작전>은 60대 이상의 관객몰이에만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20대(32.0%), 30대(22.1%), 40대(30.9%) 관객에게 더 어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여름 성수기, 방학, 가족 단위의 단체 관람, 영화의 극장 점유력, 블록버스터 장르 등의 요인들이 묶인 탓도 있을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을 분석하면서 “2014년 <명량>과 2015년 <연평해전>의 흥행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영화 시장에는 애국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전쟁 스펙터클 영화를 선호하는 무시할 수 없는 관객층이 존재한다”고 썼다. 전쟁 블록버스터는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절대적 악당으로 설정되어야 하는 이 장르에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실어 호소하는 것만큼 막강한 파장을 지닌 무기는 없을 것이다.
     
    한편 <인천상륙작전>과 유사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영화화했다. <명량>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화지만 식민지 치하에서 볼모로 잡혀간 황녀의 이야기를 고난 극복의 드라마로 만들어낸 바탕에는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 이 영화의 카피는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은 애국심 마케팅의 서로 다른 스펙트럼을 확인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당 지도부는 <인천상륙작전>을 단체 관람한 다음 북한 핵 미사일 문제를 언급했고, 야당 의원들은 <덕혜옹주>를 단체 관람한 다음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상 문제를 거론했다. 한쪽은 영화에서 현재의 안보 문제를 발견했고, 다른 한쪽은 영화에서 우리 역사에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당위를 발견한 것이다.
     
    이를 보면 애국심 마케팅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우격다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똑같이 ‘대한민국’을 내세우면서도 <디 워>는 자랑스러운 기술력을, <인천상륙작전>은 분단이라는 불안한 상황과 무명용사들을, <덕혜옹주>는 우리가 지켰어야 했지만 지키지 못했던 국권을 선택하여 서로 다른 길을 간다. 그처럼 새로운 성공의 키워드로 회자되고 있는 애국심 마케팅에도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는 혜안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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