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신을 품은 영화인들의 아버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사에 괄목할 유산을 남긴 인물로 세계 영화인 앞에서 인정받게 됐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청년, 동호>(ZONE FILM, 국제신문 공동제작)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칸 클래식' 섹션에 초청됐다. 영화는 16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청년, 동호>는 한국영화 진흥에 앞장 선 부산국제영화제 설립자 김동호의 초상이다.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한 김량 감독은 주인공의 도전 정신과 쾌활함, 예술적 감수성을 원동력 삼아 한국영화 발전에 힘 쓴 그의 공로를 따뜻하게 담아냈다. 화상통화로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그와 만나, 영화를 향한 김동호 전 위원장의 헌신과 도전 정신을 기억해야 할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청년, 동호> 김량 감독ㅣ사진 제공 주민욱
-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 2011년부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영화를 작업한다. 한국에서 미술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 <영화 청년, 동호>는 디아스포라 정서를 담고 있는 전작들과(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3편)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김동호 전 위원장과는 2008년에 프랑스 도빌 국제 아시아 영화제에서 처음 뵀다. 이후 첫 장편인 <경계에서 꿈꾸는 집>이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2015년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으로 인연을 이어가며 안부 인사를 드려왔다. 임권택 감독 회고전에서 함께 만났던 강수연 배우가 2022년 5월에 세상을 떠나고 김동호 전 위원장을 찾아뵀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한국 영화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김동호 전 위원장이나 강수연 배우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한 아쉬움이 <영화 청년, 동호>를 기획한 동기다.
- 직접 알고 지낸 김 전 위원장을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담는 과정은 어땠나.
=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김 전 위원장 이야기처럼, 한국전쟁 때 부산에서 피난생활 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30여 년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영화를 알리기 위하여 전 세계를 경험한 노마드적인 여정, 남다른 창의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그에겐 남다른 아우라가 있다. 고위 공직자로서 생활했음에도 예술가가 지닐 법한 내면을 갖고 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작품에 담았다. 인물 중심의 다큐멘터리는 처음이라 나에겐 도전이기도 했다. 영화는 김 전 위원장의 편안하면서도 소박한 이미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 촬영 기간은 어떻게 되나.
= 주요 촬영은 2023년 2월 27일부터 5월 말까지 진행했고, 가장 중요했던 부산 촬영은 7월초에 이뤄졌다. 편집에 대한 구체적인 구성은 4월부터 시작하여 두 달 정도 걸렸다. 후반작업 마무리할 때까지 간헐적으로 추가 편집도 했다.

<영화 청년, 동호> 칸 초청 포스터ㅣ존 필름 제공
- 여러 나라를 누비며 한국영화 발전에 애쓴 인물을 표현한 듯, 김 전 위원장이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이 계속 등장한다. 두 달 동안 여러 공간을 담기에 빠듯했을 것 같다.
= 다큐멘터리로서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다. 촬영 공간은 위원장 자택을 중심으로 설정했다. 첫 장면에 나오는 곳은 경기도 구리에 있는 동구릉이다. 또한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에 건립을 추진한 남양주 종합 촬영소, 2023년 76회 칸 국제 영화제 현장, 故 강수연 배우과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장지, 그리고 부산까지 담았다.
- ‘청년’이란 단어를 넣은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 이 시대 청년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영화 만드는 꿈을 가진 청년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목을 역설적으로 설정했다. 실제로도 많은 영화인들이 그가 청년정신을 지녔다고 입을 모았다. 김 전 위원장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세대다. 항상 창의적이고 도전정신의 소유자다.
- 다양한 영화인들이 등장한다.
= 임권택 감독, 이장호 감독, 정지영 감독, 이창동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조인성 배우가 등장한다. 프로타고니스라는 조연 역할로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씩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조연처럼 계속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거나 추임새를 넣는 역할로서 서사를 구성했다.

<영화 청년, 동호> 스틸컷ㅣ존 필름 제공
- 그들이 전하는 김 전 위원장과의 인연과 업적이 곧 한국 영화사의 족적이 되더라.
= 맞다. 임권택 감독은 김 전 위원장과 1988년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 이후 평생 가까이 지냈다. 아마 김 전 위원장을 인간적으로 가장 잘 아는 분이 임 감독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도 돈독하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나 두 분의 정다운 모습을 자연스럽게 촬영했다. 또 즉석에서 단독 인터뷰에도 응하며 기쁘게 반겨주었다.
- 내레이터로 배우 예지원을 섭외한 이유는.
= 따뜻한 목소리의 소유자이면서 故 강수연 배우와 연결 지점이 있다. 김 전 위원장이 은퇴한 후에 그 자리를 역임한 강수연 배우의 이야기도 우리 영화에서 중요했는데, 그녀에 대해 말할 때 단 몇 마디에도 진심이 느껴진다. 애틋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여전히 한국영화의 위기인 분위기다. 특히나 영화제의 정부 지원 규모와 예산이 크게 줄었다. 그 가운데 부산국제영화제를 설립하고 영화산업을 육성하는 데에 이바지한 인물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가 칸에 초청되었다. 소감이 어떤가.
= 정지영 감독은 인터뷰에서 ‘옛날 세대는 영화와 삶을 일치시켰다. 청년들도 그러한 마음으로 영화 작업을 한다면 영화가 훨씬 풍부해지지 않을까’ 말했다. K-무비의 신화는 김동호 전 위원장처럼 맨발로 뛰었던 세대의 열정 덕분에 열악했던 환경 속에서도 탄생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이 다시 어려워진 지금 시점에, 이전 세대의 초심을 떠올리며 우리 스스로도 영화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글 채소라, 사진제공 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