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가 메아리되어
“옥연이가 걸어서 프랑스까지 간 거야? 이게 무슨 일이야?” 임유리 감독은 <메아리> 칸 초청에 대해 함께 했던 스탭들의 반응을 전하며 예기치 못한 기쁨을 표현했다.
<메아리>(배급 인디스토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다니는 임유리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술 취한 청년들에게 쫓겨 숲으로 도망친 옥연이 몇 년 전 옆 마을 영감과 혼인한 앞집 언니, 방울을 만나면서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는 내용을 그린다. 22분짜리 단편인 <메아리>가 올해 칸영화제 학생 경쟁 '라 시네프' 초청장을 받았다. 영화는 22일에 상영된다.
싱그러운 5월 초, 임유리 감독을 씨네21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1998년생 영화 청춘은 자신의 세상을 깨고 드넓은 바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옥연처럼. 임유리 감독이 구축한 판타지 전래동화를 들어보자.

<메아리> 칸 초청 포스터ㅣ사진제공 인디스토리
- 이야기의 출발이 궁금하다.
= 꿈을 꾸었다. 한복을 입은 한 소녀가 무언가로부터 핍박받다가 금지된 숲으로 도망을 간다. 거기서 어떤 존재를 만나고, 다시 자기 삶을 찾아나가는 내용이다. 꿈에서 깨어나 엄마에게 들려줬더니 재밌다며 빨리 써보라고 용기를 줬다.
- 꿈 내용이 여성 서사를 다룬 영화가 되어 제목처럼 메아리친다.
= 멘토가 되어준 임선애 감독(<세기말의 사랑>)의 말이 나를 깨웠다. “메아리라는 제목이 묘하다. 여성들이 억압된 부분은 달라졌지만 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의 여성 이야기가 지금 메아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이 작품의 ‘시의성’에 대해 자극을 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주인공이 좀 더 당당하게 나아가는 시나리오로 다듬었다.
- 도깨비 설화를 소재로 풀어낸 점이 독특하다. 왜 도깨비인가.
= 꿈에서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로만 생각이 들었다. ‘메아리’라는 크리처에 살을 붙여가면서 그것은 요괴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도깨비로 설정을 했다. 원래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 도깨비가 되었고 이 숲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메아리> 스틸컷ㅣ사진제공 인디스토리
- 시대극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점도 여성 서사를 더 와닿게 한다.
= 현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는 게 힘들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이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그때 드러나는 첨예한 지점들이 너무 좋다. 판타지를 좋아하고 계속 만들고 싶은 이유다.
- 중반부에 여인네들이 ‘강강술래’를 춘다. 춤 장면 구상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
= 수업시간에 ‘도깨비들이 춤을 춘다’라고 쓰여진 시나리오를 보고 한 학우가 낸 의견이다. 강강술래 풍습이 전하는 일탈의 자유로움과 손을 잡는다는 연대 행위가 느낌이 좋았다.
- 방울과 옥연 역의 두 주연 배우도 같은 학교 출신인가.
= 방울/메아리 역을 맡은 김평화 배우는 졸업생 선배다. 학교 공연을 보고 그에게 반했다. 옥연 역은 오디션을 봤다. 정은선 배우가 지닌 에너지가 좋았다. 또 옥연을 악에 받친 인물이 아닌 지치고 힘들고 여리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용기를 내는 인물로 해석한 점이 맘에 들었다.
- 밤 촬영, 그것도 숲 속 장면이 대부분이다. 고생스럽진 않았는지. 숲 속 장소는 어디인가.
= ‘성황림’이라고 강원도 소재의 자연보호림이다. 원주에서 그리 멀지 않다. 숲 속에서 4일 밤샘 촬영을 했다. 2년 전 강남에 물난리 났을 때, 우린 숲 속에서 모기와 사투를 벌였다. 여름에 돕바까지 입고. 심지어 커피도 없이 버텼다. (웃음) 힘든 촬영에도 모두가 재밌었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 숲 속 서낭당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
= 원래 있는 사당이다. 마을 주민 말에 따르면 실제로 제사도 지낸다고 한다. 늦은 밤 추운 숲속에서 밤새 촬영 중일 때, 마을 주민들이 옥수수와 찐빵을 머리에 한가득 이고 촬영장을 찾아왔다. 우리끼리 여기 진짜 영험한 곳 아니냐며 속닥거렸다.

임유리 감독ㅣ (c) 씨네21 최성열
-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장편도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장편은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는 이야기가 될까.
= 잡아먹어 버리는 도깨비 ‘메아리’가 탄생하게 된 500년 전의 마을과 500년 후의 마을을 병치시키면서 전개될 것 같다. 그리고 춤 장면을 좀 더 웅장하게 찍어보고 싶다. 마을에서 달빛과 노란 촛불 조명 아래 사람들이 춤추는 축제의 장면을 만들어보고 싶다.
- 호러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데, 그 색깔을 많이 중화시킨 느낌이다.
= 원래는 훨씬 잔인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눈알 터지는 장면이고 싶지 않았다. 옥연이가 큰 숲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가는 장면, 꿈에서 본 그 장면 하나만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영화다.
- 그렇다면 연출자로서 <메아리>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직접 전한다면.
=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옥연이 바다를 보면서 숨을 크게 쉬는 장면을 남기고 싶었다. 영화에는 바다 장면을 일부러 넣지 않았다. 대신 관객들이 각자의 바다를 상상하길 바랐다. 그러면서 한 번쯤은 이 작은 소녀가 어디서 어떻게 행복하고 있을지 그리고 어떤 바다를 거닐고 있을지 상상해 봤으면 좋겠다.
글 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