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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시장 확대와 그 이면

2024.11.08
  • 출처 KoBiz
  • 조회수2064

'2024 애니메이션 산업백서'로 다시 보는 2023년 극장 애니메이션산업 이슈

 

2023년 극장가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장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디즈니의 <엘리멘탈>,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연간 외화 흥행 순위 1위부터 3위를 차지하며, 애니메이션 장르는 국내 영화 시장에서 전례 없는 강세를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장르는 2022년 불과 9%의 점유 비율에서 3배 가까이 급증하여 국내 전체 영화 매출액의 24.1%를 차지하며 역대급 실적을 기록, 그 성장 가능성을 확연히 드러냈다. 국내 극장 시장에서 애니메이션 장르가 이처럼 높은 흥행 실적을 거두고 시장을 확장시킨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을까.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4 애니메이션 산업백서'를 바탕으로 시장 확대의 동력과 그 이면을 살펴본다. 

 


<엘리멘탈>,<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하이 타깃 애니메이션 시장의 성장

 

국내 극장 시장에서 애니메이션 장르가 흥행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은 갑작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1, 2편이 연속적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시장의 파급력이 확대되었다. 이는 국내 가족영화 시장의 성장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으며, 실제로 이후 국내에서 개봉된 대부분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흥행성이 검증된 가족영화 시장을 목표로 배급의 포지셔닝을 잡아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들의 흥행 추이를 분석해 보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하이 타깃으로 불리는 12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들의 돌풍이다. 흥행 10위 내에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 12세 이상 관람가이며, 심지어 흥행 11위에 오른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 판정을 받은 작품이다. 특히 <스즈메의 문단속>이 기록한 관객수 557만 명은 <겨울왕국 1, 2>와 <엘리멘탈>에 이은 역대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흥행 4위의 기록이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87만 명으로 역대 7위를 기록했다.

 

애니메이션 장르의 특성상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지 못하면 주요 고객인 아동층과 보호자 동반 관람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흥행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된다. 그로 인해 흥행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대부분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전체관람가 등급을 전제로 기획되는 경향이 강하며, 실제로도 그동안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흥행 순위는 전체관람가 작품들로 거의 채워져 왔다.

이렇듯 ‘애니메이션=전체관람가’의 등식이 하나의 흥행 공식처럼 깔려 있는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12세 이상 관람가 작품이 2편이나 동시에 역대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매우 큰 변화로 볼 수 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흥행 트렌드가 아동을 중심으로 한 가족영화 대상에서 청소년 이상의 성인층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대한민국 연령별 인구 현황에 따르면 12세 이하 인구는 저출산의 영향으로 2012년 636만 3,687명에서 2022년 497만 3,286명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동층의 인구가 감소하였음에도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규모는 2012년 5,210억 원에서 2022년 9,210억 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애니메이션의 소구 대상이 더 이상 아동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되어서도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실시하는 애니메이션 이용자 실태조사에서 애니메이션의 이용자군을 60대까지 확대(2021년 조사부터)한 것도 이 같은 변화의 연장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 확대의 가장 큰 요인은 청소년층 이상의 성인 관객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가족영화 시장과 더불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전체 파이를 확장한 효과로 볼 수 있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 N차 관람 문화가 일으킨 시장 증대 효과

 

청소년층 이상의 관객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타깃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의 방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기존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극장 문화가 흥행의 변수로 떠오른 것인데, 이른바 ‘N차 관람’으로 불리는 재관람 문화가 팬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작품의 흥행에 일조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재관람을 시도하는 이 문화는 10명의 라이트유저보다 1명의 하드유저가 흥행적으로 더 유의미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국내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N차로 반복 관람하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1월에 개봉된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부터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무려 23주 연속 국내 박스오피스 톱 10(역대 국내 개봉 영화 최장 기록)을 지키며 2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이 작품의 흥행 과정에서 N차 관람 이슈가 크게 주목받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맞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등장한다. 기존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 홍보 전략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팬덤을 대상으로 타깃을 명확히 하여 개봉 1주차, 2주차, 3주차별로 기념품을 주는, 이른바 특전 마케팅 전략이 N차 관람의 목적성을 증폭시키며 새로운 흥행 지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SMG홀딩스, 워터홀컴퍼니, 미디어캐슬 등과 같은 중소 애니메이션 수입 배급사들이 적극적으로 시도했으며, 이후 쇼박스, NEW, CJ CGV와 같은 메이저 배급사들로까지 N차 관람을 유도하는 특전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23년에 국내 개봉된 애니메이션 중에서 N차 관람으로 인한 흥행 가산 효과를 가장 많이 누린 작품은 SMG홀딩스가 수입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배급사가 자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487만 명의 관객 중 28.6%에 달하는 약 140만 명이 N차 관람에 의해 달성된 흥행 수치라고 보고되었다.

 

또한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 참석한 조진호 CJ CGV 국내사업본부장은 N차 관람의 대중화에 대해 언급하며 “한 30대 여성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16회나 관람했다.”라면서 “최근 1년간의 N차 관람 횟수는 전 연령대에서 증가했으며, 특히 올해 N차 관람 문화의 대표 주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

 

엄밀히 따지면 N차 관람은 동일한 관객이 하나의 콘텐츠를 반복해서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시장 확대의 증표로 삼는 것은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극장의 흥행 실적을 관객수가 아닌 흥행 수입(매출액) 기준으로 집계하고 있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람을 했는가보다 얼마의 돈을 벌었는지가 실질적인 성공의 지표로 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N차 관람을 통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수익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시장 규모를 더 크게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N차 관람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흥행 요소로 부각되면서 특정 작품의 팬덤을 N차 관람으로 유도하는 홍보 전략은 더욱 세심하게 기획되고 있으며, 이 같은 흐름은 2024년 극장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뽀로로 극장판> <그 여름> 스틸컷 

 

■ 시장 확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국산 애니메이션

 

지난해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국산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침체기를 겪고 있다. 개봉 편수는 13편으로 전년과 동일하나, 매출액은 2022년 169억 원에서 2023년 90억 원으로 47% 급감했다. 관객수 1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도 6편에서 4편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2년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한 <뽀로로 극장판>은 최저 흥행 수치를 기록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흥행 부진은 여러 원인으로 설명된다. 먼저, 2023년 애니메이션 이용자 실태조사에서 45.4%가 "대부분 유아용 애니메이션이라서" 관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와 달리 일본의 하이타깃 애니메이션은 청소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점유하지 못한 시장을 빠르게 차지했다. 특히 이러한 작품들은 객단가가 높아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기획 방향도 다원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해외에서 12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의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국산 애니메이션이 같은 시장을 타겟팅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과포화된 국내 극장 시장과 해외 수입 애니메이션의 물량 공세도 국산 애니메이션의 흥행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지적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개봉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30편 정도였으나, <겨울왕국>의 흥행을 계기로 해외 저가 애니메이션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2013년 이후 개봉 편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2023년에도 81편이 개봉되었으며,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월등히 많은 수치다. 그로 인해 국산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의 상영 기회를 얻기 어려워졌다. 과거 한국 영화가 스크린쿼터 제도로 보호받으며 성장한 것처럼, 국산 애니메이션도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글 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