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국 극장가는 오랜만이라 더욱 반가운 여자 배우들의 주연 영화 4편이 개봉했다. 신민아, 한선화, 백진희, 정하담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의 시골과 지방 도시의 풍경을 정감 있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부터 충격적인 진실을 파고드는 미스터리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로 돌아왔다.
신민아, 죽은 엄마와 딸의 정다운 재회 <3일의 휴가>
신민아가 3년 만에 극장 관객을 찾았다. <디바>(2020) 이후 3년 만이다. 그녀는 스릴러 연기에 도전했던 전작 뿐만 아니라, 데뷔 초 로맨스 주인공으로 인상을 남긴 <마들렌>(2002), <야수와 미녀>(2005)나 배역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경주>(2014) 등 다수의 대표작을 선보여 왔다.
복귀작 <3일의 휴가>에서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12월 6일 개봉한 <3일의 휴가>는 하늘에서 휴가 온 엄마 복자(김해숙)와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 진주(신민아)의 힐링 판타지 영화다. <나의 특별한 형제>()를 연출한 육상효 감독 신작이며, 영화의 각본은 <7번방의 선물> 각색, <82년생 김지영> 각본을 맡았던 유영아 작가가 썼다.
신민아가 연기한 주인공 진주는 미국에서 명문대학(UCLA) 교수가 됐으리라 기대 받던 복자의 외동딸이다. 복자는 자신의 팔자를 닮지 않길 바랐던 딸이 생전 자신이 운영했던 시골의 식당으로 돌아온 모습에 실망한다. 모녀지간의 소통과 애틋한 사랑은 예상 가능한 전개일지라도, 신민아와 김해숙의 유쾌한 캐릭터가 매력적인 영화다. 정겨운 시골 풍경과 다양한 음식들은 오감을 자극한다.
한선화, 고향에서 모인 세 자매 가족사 <교토에서 온 편지>

한선화는 걸그룹 시크릿 활동을 종료한 뒤 한국 독립영화로 주연 데뷔해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데뷔작은 <영화의 거리>(2021)이며, 그보다 먼저 촬영했지만 이듬해 개봉한 차기작 <창밖은 겨울>(2022)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가수 아닌 배우 한선화로 자리매김 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여름 성수기에서 관객 수 138만 명을 달성한 상업영화 <달짝지근해: 7510>(2023)를 거쳐, 다시 세 번째 독립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로 돌아왔다.
12월 6일 개봉한 <교토에서 온 편지>는 부산 영도 고향집에 모인 세 자매의 이야기다.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일본어 편지를 통해 50년간 가슴에 묻어왔던 엄마의 소중한 비밀이 밝혀지는 가족 드라마다. 한선화는 서울에서 방송작가로 살다 낙향한 주인공 혜영 역을 맡았다.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가장 노릇을 하는 첫째 혜진(한채아)과 마찬가지로 상경하는 게 꿈인 막내 혜주(송지현)의 속사정, 홀로 세 자매를 키운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며 가족들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부산 영도는 가족들을 묶어주며 다양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 같은 배경이다.
영화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청받은 후, 제29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영국 런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일본 오사카 등 각국에서 개최되는 한국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백진희, 국가대표의 죽음에 숨겨진 충격 실화 <미끼>

백진희는 10년 만에 개봉작을 선보인다. 그 동안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배우이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전작은 옴니버스 공포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다. 당시 민규동, 김성호, 김휘, 정범식 감독이 연출한 네 편의 공포 영화를 엮은 작품이다. 백진희는 <이웃사람>(2012), <석조저택 살인사건>(2017) 등 공포영화를 연출해 온 김휘 감독의 <사고>라는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14일 개봉한 백진희 복귀작 <미끼>는 현실 고발 드라마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주영(백진희)이 동료의 죽음 이후, 부조리하고 폐쇄적인 선수촌 안에서 묻어두었던 과거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마음먹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이른바 ‘체육계 성폭력’ 고발 사건이 있었던 빙상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화가 바탕이다. 백진희는 부조리한 과거의 사건을 묵인하고 살던 중, 자신의 제자에게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 되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고 각성하는 주인공 주영 역을 맡았다. 그 동안 맡아온 명랑한 캐릭터와 정반대 역할처럼 보이지만, 배우 백진희만의 강단 있는 에너지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정하담, 종교적 구원을 꿈꾸는 엄마의 간절함 <신세계로부터>

정하담 역시 3년 만의 주연작을 들고 온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과 지난해 짧고 강렬한 인물로 등장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지만, 영화 주연작은 신수원 감독 영화 <젊은이의 양지>(2020) 이후 오랜만이다. 정하담은 2015년 데뷔작 <들꽃>으로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표작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에서는 유관순(고아성)과 함께 투옥됐다가 항일 의지를 다지는 천진한 인물 이옥이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일 개봉하는 미스터리 드라마 <신세계로부터>에서 정하담은 탈북자 명선 역을 맡았다. 탈북 중 아들을 잃고 한국의 시골마을에 정착한 명선은 함께 탈북한 의문의 종교 교주 신택(김재록)을 보필하며, 아들의 부활을 꿈꾼다. 전작을 통해 위태롭고 흔들리는 소녀, 청춘의 이미지를 보여왔던 정하담은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게 됐다. 특유의 묘한 눈빛에 간절함이 더해져 더욱 강렬한 그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탈북민 역할을 한 배우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를 위해 실제로 북한 출신인 북한말 전문가에게 지도 받고, 매일 저녁마다 녹음일기를 기록하며 연기연습을 했다. <프레스>(2017), <앵커>(2019)를 연출한 최정민 감독 신작이다.
글 채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