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살펴보는 2023 한국영화계
2023년 한국 극장가는 아직 팬데믹 이전의 활기를 되찾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도 잃어버린 관객 수를 끌어 모은 다양한 화제작과 양질의 영화들이 개봉했다. 박스오피스 집계를 통해 2023 한국 영화계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쌍천만영화 탄생... <범죄도시 3>, <서울의 봄>
냉기운이 감돌던 2023년 극장가에 천만 한국영화가 두 편이나 탄생했다. 상반기에 개봉한 <범죄도시 3>와 연말 극장가에 봄을 다시 찾아주고 있는 <서울의 봄>이다.
팬데믹 이후, 한국 극장가에 흥행 보증수표랄 게 없어진 듯 보였으나 <범죄도시> 시리즈의 기세를 보면 배우 마동석이 유일하게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가 아닐까 싶다.
마동석이 주연, 제작한 액션영화 <범죄도시 3>(5월 31일 개봉)가 누적 관객수 천만명을 돌파하며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연이은 흥행실패의 냉기를 깨부수었다.
12월 2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정확한 관객 수는 1068만2813명이다. 전편 <범죄도시 2>(2022)이 모은 1269만명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올해 한국영화 중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시리즈 두 편이 연달아 많은 관객에게 회자되며 고공행진했다.
참고로 올해 처음으로 누적 관객 수 천만명을 기록한 영화는 2022년 12월 14일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이다. <아바타: 물의 길>은 팬데믹 이후 개봉한 외화 중 첫 번째로 천만명을 돌파했다.
올해 두 번째 천만 한국영화는 12월 24일에 기록을 달성했다. 황정민, 정우성 주연의 <서울의 봄>이 개봉 33일 만에 누적 관객수 1006만533명을 동원했다. 개봉 6주 차인 연말에도 <서울의 봄>의 좌석판매율은 식지 않고 있다.
또한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서울의 봄>은 관객들의 공분을 사게 하며 재미있는 밈을 유행시켰다. 주로 10, 20대 관객이 영화를 보며 분노했다는 증거로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체크하고, 이것을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는 일명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했다.
전두광 역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전작 <인질>(2021)이 깜짝 상영하기도 했다. 배급사 NEW는 소셜미디어에서 개봉작에 대한 재미있는 밈을 발견하고, 극장 CGV와 함께 <인질> 재상영을 결정했다. <인질>은 극 중에서도 배우인 황정민이 인질로 납치돼 생존을 위해 극한의 탈주극을 벌이는 리얼리티 액션 스릴러로, 특별 상영의 콘셉트는 ‘대리만족 재상영’으로 소개되었다.
올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석권한 <서울의 봄>의 질주가 어디까지 갈지 지켜볼 일이다.
#식지 않는 애니메이션 신드롬

화제성, 흥행과 장기상영 기록 경신까지. 올해 한국 극장가는 애니메이션이 가장 큰 화제성으로 관객을 끌어 모았다.
연초 시작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신드롬을 일으켰고, 3월 <스즈메의 문단속>이 바톤을 이어 받았다. 6월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누적 관객수 723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3위를 달성했다. 여기에 하반기 개봉한 애니메이션 두 편의 총 누적 관객수까지 합산하면 무려 1972만8006명에 달한다.
애니메이션 신드롬을 이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월 4일 개봉해, 14일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모았고 24일 차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현재 총 누적 관객 수는 479만1298명으로,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했다.
또한 지금까지 1년여 간 상영을 이어가 전례 없는 장기 상영 기록까지 경신하는 중이다. 12월 13일에는 IMAX 재상영을 시작으로, 개봉 1주년인 2024년 1월 4일부터 17일까지 상영관을 확대해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 토크 이벤트 영상이 포함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 COURT SIDE in Theater>를 2주간 특별 상영한다.
개봉 초기에는 1980년대 만화책을 본 관객을 타겟으로 마케팅을 전개하는 듯 했으나, 개봉 이후 10대와 20대 관객이 신드롬에 불씨를 지피면서 흥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부응해 응원 상영, 성우 무대인사 등 다양한 이벤트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3월 바톤을 이어받은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2017)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작이다. 총 누적 관객 수 557만3778명을 기록해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다. 전작 <너의 이름은.>을 훌쩍 뛰어넘는 흥행 기록을 달성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12월 24일과 25일, 양일 간 내한해 국내 관객을 만났다. 내한 일정 중에는 특별판 <스즈메의 문단속: 다녀왔어> 상영했으며, 내년 1월 10일부터는 영화의 제작기를 담은 <메이킹 다큐멘터리 스즈메의 문단속을 따라가다> 상영도 예정돼 있다.
애니메이션 열기가 한김 빠진 6월에는 <엘리멘탈>이 출격했고, 10월에는 은퇴를 선언했던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거장 감독의 복귀도 화제였지만, 난해하다는 혹평과 역작이라는 호평이 갈리면서 200만 관객을 모았다. 긴 제목과 독특한 포스터 디자인을 변형한 밈도 생겨나기도 했다.
#선전한 중저예산 영화 vs 아쉬운 빅4

영화 한 편이 관객 수 100만 명도 어려운 극장가에서, 영화 흥행은 소위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양분되는 양태를 보였다. 그 가운데서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중저예산 영화들이 선전했다.
8~10월에 영화 <달짝지근해: 7510> <잠> <30일>이 차례로 개봉해, 모두 관객 호평을 받으며 흥행했다. 유해진, 김희선 주연의 <달짝지근해: 7510>는 의외의 흥행으로 관객 138만 명을 동원해 극장 수익으로는 손익분기점 가까이 도달했다. 147만 명이 본 정유미, 이선균 주연의 <잠>과 216만 명을 돌파한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30일> 두 편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으며 제작비를 회수했다. 특히 <30일>은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과,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을 제치고 10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소위 ‘빅4’로 일컫는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여름 성수기 한국 대작 영화는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7월 26일 개봉)가 514만 명, 이병헌 주연작 <콘크리트 유토피아>(8월 7일 개봉)가 384만 명을 돌파해서 두 편은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지만, 여름 대목인 8월 첫째 주에 동시 개봉한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수백억원대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흥행하지 못했다. 하정우, 주지훈 주연의 <비공식작전>은 105만 명, <신과함께>의 김용화 감독 신작인 <더 문>은 51만 명을 모으는 데에 그쳤다. 추석 연휴 극장가를 노렸던 <거미집>은 31만 명,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191만 명을 동원해 아쉽게 극장에서 내렸다.
#공연실황 영화에 빠진 극장가

공연실황을 담은 K팝 가수의 다큐멘터리가 회복세가 더딘 한국 극장가에 관객을 끌어들였다.
올해 2월 그룹 방탄소년단의 공연실황 영화 <방탄소년단 : 옛 투 컴 인 시네마>가 관객 92만 명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3월에 개봉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무려 25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공연실황 영화는 이후에도 매달 한 편 꼴로 개봉해 2023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공연실황 영화가 더욱 극장 활력에 일조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높은 티켓 가격이다. 관객 수가 비슷한 일반영화의 누적매출액에 비해, 공연실황 영화의 누적매출액이 두 배 이상 높다.
실제로 <아이유 콘서트 : 더 골든 아워>는 22,000원, <마이 샤이니 월드>는 23,000원으로 티켓 값이 책정됐고 통신사 할인은 적용되지 않았다. 공연실황 영화 티켓 가격은 일반영화의 주말 프라임 시간대의 티켓 값인 15,000원보다 더 비싸서, 1석 당 일반영화의 약 1.5석의 수익을 낼 수 있게 된다.
주로 가수의 팬덤인 공연실황 영화의 관객은 15만원 내외인 콘서트 티켓 가격에 비하면 영화 관람료가 훨씬 저렴하게 느낄 수 있는 금액대이다.
#웹툰 원작 OTT 타고 날다
웹툰 원작인 영화·드라마가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돼 흥행했다. 대중성과 작품성에 대해서는 1차 검증을 마친 웹툰을 원작으로 삼고, 한국의 탄탄한 프로덕션에서 제작, 그리고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관객과 만나 시너지를 톡톡히 냈다. 올해 흥행한 OTT 영화·드라마 대부분이 국내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디피)는 2021년에 첫 번째 시즌을 공개해 한국의 흥행 콘텐츠 선두주자가 됐다. 작가 김보통의 웹툰 <D.P. 개의날>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시즌 1의 흥행세를 몰아 공개 직후 290만 뷰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TOP 10에서 TV 부문(비영어) 5위에 올랐다.
하반기 흥행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공개와 동시에 월드 와이드 TV쇼 부문 TOP 21위에 올랐다. 또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일본, 홍콩에서는 1위에 올랐다. 이후 디즈니+의 한국 이용자 수가 100만 명으로 증가하기도 하면서 <무빙>이 한국 구독자를 늘리는 데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외에도 작가 매미, 희새의 동명 웹툰 원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은 넷플릭스 TOP10에서 전세계 2위를 기록했고, 작가 민송아의 동명 웹툰 원작 <이두나!>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9개국 넷플릭스 TV쇼 1위(플릭스패트롤 제공)를 기록했다.
#내한 이벤트 활기

팬데믹 종식 후 해외 영화인들의 내한 이벤트가 활기를 띠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뿐만 아니라 일본 배우와 감독들도 한국 관객 앞에서 홍보 활동을 펼쳤다.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 언론과 만나는 기자회견, 관객과 만나는 레드카펫 이벤트뿐만 아니라 국내 인기 유튜브 채널까지 출연하며 적극적으로 영화 홍보에 나섰다.
5월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제임스 건 감독과 배우 크리스 프랫, 카렌 길런, 폼 클레멘티에프은 월드 투어 첫 순서로 한국을 찾았다.
6월에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딩 PART ONE>의 톰 크루즈와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 헤일리 앳웰, 사이먼 페그, 바네사 커비, 폼 클레멘티에프는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무려 1시간 40분 동안 한국 매체와 만났다. 톰 크루즈는 이번이 11번째 한국 방문이었다.
7월에는 <바비>의 주연 마고 로비, 아메리카 페레라 배우와 그레타 거윅 감독이 처음으로 내한해 화제를 모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한남자>의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아케 쇼 감독과 배우 키시이 유키노,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이 한국 관객과 만났다.
12월 4째 주 독립예술영화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괴물>은 인기에 힘입어 개봉 4주차에 주연 아역배우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가 내한했는데, 이미 관객 수 31만 명을 돌파한 시점에서도 두 배우의 무대인사 상영회차가 예매 오픈 2분여 만에 전석 매진됐다.
글 채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