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트렌드 포럼 – 영화 파트 분석
어느 때보다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의 대중문화가 각광받은 올해, 한국 영화 내수 시장은 매출액과 관객 수가 2019년의 평균 50~60% 정도 규모에 머무는 침체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영화계 전문가들은 정점을 찍었던 산업 규모를 회복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었다.
2024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한국 대중문화 전반의 현 주소를 점검하고 다음 해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K 컬처 트렌드 포럼’이 지난 11월 7일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렸다. 포럼은 음악, 드라마·예능, 웹툰, 영화 등 4개 세션으로 구성되었으며 패널로 언론과 평단, 현업 종사자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석해 통찰력 있는 분석과 전망을 발표했다. 영화 세션에서는 정민아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현경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나원정 중앙일보 기자, 그리고 <서울의 봄>, <핸섬가이즈>, <보통의 가족> 등을 제작한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2024년을 결산하고 2025년을 전망하는 'K컬처 트렌드 포럼'의 영화 세션 현장
뉴 노멀 시대 원년 · ‘비영화’ 팬덤과 만난 극장 · MZ 씨네필 문화
팬데믹 이후 4년이 흐른 올해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몇 가지 뚜렷한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한 해였다. 나원정 기자는 “엔데믹 이후로 기존의 흥행 법칙이 깨졌다. 영화사들은 비로소 그 변화를 뼈저리게 느끼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한 원년으로 평가된다. 시장 관행 파괴가 많이 이루어진 해”였다고 정리했다. 올해 탄생한 ‘천만 영화’ <파묘>를 오컬트 장르 최초로 흥행한 사례로서 주목했고, 러닝 타임을 줄여 극장 편성과 시간 대비 성능을 일컫는 ‘시성비’에 관객이 호응한 사례로 올해 흥행 7위를 기록한 <탈주>를 꼽았다.
팬덤 기반 ‘비영화’ 콘텐츠와 극장의 다채로운 크로스 오버 관람 형태가 발견된 한 해이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K-팝 스타 임영웅의 콘서트 필름 상영, 배우 변우석 주연의 TV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마지막 회 단체 관람,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 중계 등이 모두 영화관에서 이루어졌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영화관은 한국 영화 산업에서 수익의 80%가 발생하는 곳이다. 올해는 영화관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와 전략이 동원된 해”였다며 극장과 산업 동향에 관해 정리했다. 김원국 대표는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와 개봉 편수가 줄어든 제작 현황을 언급하며 “영화 한 편을 1~2개월 동안 상영할 수 있는 지금 상황이 좋다”며 제작자로서 견해를 밝혔다. 한국 영화 제작과 개봉이 쏟아지다시피 했던 시기보다는 오히려 한 편의 영화를 안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었다.
MZ 세대로 통칭하는 20대와 30대 관객은 씨네필 문화를 주도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현경 영화 평론가는 “MZ 세대는 반드시 겪은 것에 대한 정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가 아닌 이상향’을 생각하는 낭만적인 희망의 정서, 노스텔지어를 느끼는 것 같다. 또한 씨네필의 정체성으로서 재개봉 붐을 이끌거나 차별화된 취향을 소비”했다며, 젊은 관객들의 영화 관람 경향이 재개봉의 붐을 이끌었다고도 설명했다.

포럼의 영화 세션은 마지막으로 <서울의 봄>과 <베테랑 2>로 악과 정의의 얼굴을 보여준 황정민을 MVP로 선정했다.
글로벌 광풍 <파묘>의 파급력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투자와 일자리 축소로 진통을 앓는 영화계 종사자의 생존 전략은 글로벌 시장이다. 올해 탄생한 ‘천만 영화’ <파묘>와 <범죄도시 4>는 나란히 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고, 아시아 관객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선풍적인 관심을 모았다.
정민아 교수는 “한국 개봉 당시부터 아시아 관객들의 반응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었다. 얼굴에 글자를 쓴 장면에 대해 중국 관객이 부정적인 의미라고 비난했으나 한국 관객보다 먼저 나서서 대만, 홍콩 관객이 영화적인 유례를 찾아 주었다”며, 실시간으로 반응이 확산되는 최근 글로벌 흥행의 양태를 짚었다.
올해 한국 최고 흥행작 <파묘>는 133개국에 판매되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등 아시아 국가의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한국 영화 최고 개봉 수익을 기록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개봉 첫 날부터 약 66억 원에 달하는 매출로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매출액 약 765만 달러, 인도네시아에서 75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2024.05. 기준) 10월에 개봉한 일본에서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수익 1억 엔을 돌파했다.
극장 활력 주던 아이돌 콘서트 영화, 해외로 향하다
국내에서는 팬데믹 이후부터 꾸준히 극장 수익 창출을 책임진 K-팝 아이돌의 콘서트 영화가 글로벌 수출로 한층 든든한 효자 역할을 했다. 정 교수는 이와 관련해 “올해는 BTS 멤버별 다큐멘터리 영화가 눈에 띈다. 수출 시장에서 일종의 출구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며, BTS 멤버 정국과 알엠의 개별 영화에 주목했다. CGV ICECON 배급작인 멤버 정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정국: 아이 엠 스틸>은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1076만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그동안 BTS, 블랙핑크, 임영웅, 세븐틴의 공연 실화 영화를 만들어 온 CJ CGV의 자회사 CJ 4DPLEX는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를 시작으로 글로벌 배급 사업에 새롭게 진출한다. 영화는 지난 10월 K-팝 아이돌의 콘서트 필름 최초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11월 6일에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독일 등을 포함한 40개국가/지역에서 1차 글로벌 예매가 시작되었다. 한국을 비롯해 대만, 튀르키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등을 포함한 46개국가/지역의 2차 글로벌 예매는 오는 11월 20일에 시작해 12월 5일에 전 세계 90여 개 국가 및 지역에서 개봉한다.
해외에서도 통하는 ‘마동석’ 브랜드
“마동석이라는 브랜드를 해외 시장에서 알고 있다.” 영화 산업에서 현장의 소리를 긴밀하게 취재해 온 나원정 기자는 세계 영화인들도 배우 겸 제작자 마동석이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된다고 전했다.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 <범죄도시 4>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시리즈 명성과 마동석의 인지도를 공고히 했다. 국내에서 시리즈 4편의 통산 누적 관객 수 4,000만 명을 돌파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운 뒤, 5월에 열린 감사 쇼케이스 현장에서 마동석은 리메이크 소식을 알렸다. 2편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제작이 확정되어 마동석이 공동 제작하며, 3편은 두 곳에서 리메이크 제안을 받은 상태다.
알고 보면, '메이드 바이 코리안'
다채로운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한국적인 색채를 빼고 수익을 내는 전략도 보였다. 지난 3월 베트남에서 개봉한 <마이>는 5,510억 동(약 2,240만 달러)을 벌어 들이며 역대 베트남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지난 10년간 한국 색채를 빼고 현지에서 기획개발과 제작 환경의 기반을 닦은 CJ ENM의 베트남 법인 CJ HK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CJ가 우리 산업의 전략을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영화뿐만 아니라 예산이 작은 영화로도 시장을 차지하는 전략을 잘 구사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CJ ENM은 이달 10일 일본 TBS그룹과 향후 3년간 3편 이상의 지상파 드라마 및 2편의 영화를 공동으로 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며 아시아 권역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22년부터 다시 ‘천만 영화’가 탄생하고 세계 무대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낸 한국 영화계는 조금씩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투자의 기준이 높아진 만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팬덤을 가진 대중문화 콘텐츠를 극장으로 들여 새로운 분야에서 관객이 유입되는 효과를 확인하는 한 해였다. K컬처 트렌드 포럼은 이런 현상에 대해 “모든 것이 영화가 되었다”라는 말로 2024년 영화계를 갈무리했다. 앞으로 한국의 영화 산업은 다양한 콘텐츠를 포용하고 확장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로 나아갈 전망이다.
글 채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