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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미래, KAFA 그리고 박한얼

2024.12.31
  • 출처 KoBiz
  • 조회수687

단편 애니메이션 <곰팡이> 토리노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최우수 작품상 수상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곰팡이>(Walk In)가 지난 11월 30일 폐막한 제42회 토리노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측은 <곰팡이>의 독창적인 이야기 구조와 감각적인 표현 방식에 찬사를 보냈다.

 

<곰팡이>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KAFA) 정규과정 40기 졸업작품으로, 박한얼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배우자의 유골함에 핀 곰팡이를 스스로의 몸에 증식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작품으로 해외 무대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돌아온 98년생 박한얼 감독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KAFA 정규과정 40기 졸업작품인 단편 애니메이션 <곰팡이>가 제42회 토리노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왼쪽이 박한얼 감독.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소감부터 듣고 싶다.

= 어안이 벙벙했다. (웃음) 원래는 폐막식 전날에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떠나기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았다. 급하게 항공권과 호텔을 연장하고 변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폐막식 현장에 가서야 실감을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첫 작품이고, 해외에서 상영하는 것도 처음이고,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다. 혼자 동떨어진 존재 같았는데, 불려 나가 상을 받으니까 독특한 경험이었다. 기쁨도 많이 느꼈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 토리노 현지 반응을 직접 경험해보았을 텐데, 어떤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나?

= 질문 중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작품의 독특한 아트 스타일을 어떻게 구축했느냐고 질문하면서, 색 구성이 독특하고 공간마다 개성이 느껴진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이에 대해 나는 프리 프로덕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본능에 맡겨 작업했다고 대답했다. 본능적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을 좋아했다.

 

-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2023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입학했다. KAFA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이야기와 이미지를 창작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취미로 그리다가 애니메이션을 더 배우고 싶어 유학도 알아보고 포트폴리오도 준비했다. 그러다가 부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후원사 리스트에서 KAFA를 발견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을 1년간 만드는 정규과정이 있어 앞뒤 안보고 지원했다.

 

-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배웠나?

= 배웠다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조금 배웠다. 근데 보는 걸 좋아했다. 여러 가지 스타일의 그림을 보고 영화도 일종의 구성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즐겼다.

 


 

- <곰팡이>의 이야기 구조가 굉장히 독특하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나?

= 졸업 영화제 때 들은 평가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 ‘박한얼이라는 사람은 사람에 관심이 없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맞다. 난 사람보다 현상에 관심이 많다. 곰팡이라는 소재에 매료된 것도 곰팡이가 가지고 있는 앙면적 성질 때문이다. 곰팡이는 썩어있고 죽어있는 물체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곰팡이 자체는 또 다른 생명이다. 이런 양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 유골함에서 곰팡이가 피어난다는 설정은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

= 곰팡이에 대해 정말 많이 조사했다. 실제로 기숙사에서 곰팡이를 키우면서 관찰한 경험도 있다. 검색하다가 동물원 표본 보관함에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피었다는 뉴스를 봤다. 실제로도 유골함 보관을 잘못하면 곰팡이가 핀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변화가 인상적이다. 캐릭터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 곰팡이라는 현상에 매료된 것도 있지만, 경험에서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실제로 가족 중에 최근에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어렸을 때부터 장례식을 또래에 비해 많이 갔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도 삶의 한 부분이고 과정이다. 그런 고민들이 곰팡이라는 소재의 성질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은 두렵지만, 동시에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과정이니까. 이런 양면적 감정 때문에 영화도 그런 톤을 지니게 된 것 같다.

 


 

- 영혼까지 곰팡이에게 잠식당한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이 꽃을 피우듯 화사하다.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임에도 아이러니하게 아름답다. 감독이 추구한 양가감정을 전하는 대목 같다.

= 원래는 침대에 누운 상태로 끝나는 콘티였다. 제작 후반에 단순히 '이 여자는 죽는다'하고 끝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누워있던 캐릭터를 일으켜 앉혀서 창 밖을 보게 했다.

 

- 토리노국제영화제 측은 독창적인 스타일과 시적 표현력에 큰 박수를 보냈다. 작화 작업할 때 참고한 작품이 있나?

=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를 많이 참고했다. 주인공의 감정이 폭발할 때 연필선을 확 거칠게 쓰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한다. <곰팡이>와는 상반된 톤이지만, 캐릭터 연출할 때 많이 참고했다.

 

-음악도 굉장히 잘 쓰였다. 특히 찌르는 듯한 사운드가 주인공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사운드 디렉션은 어떻게 했나? 

= 이처럼 색깔이 진한 영상에서는 사운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음악으로 감정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립적으로 가되, 욕실 신처럼 주인공이 가장 많이 움직이고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신경을 거스리면서도 충동이 올라오는 것 같은 사운드를 넣으려고 했다. 그런 앰비언스 사운드들의 레퍼런스를 찾아서 사운드 감독님께 전달했었다.

 

- <곰팡이>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언어, 말은 무엇인가?

=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죽음을 끌어안는 몸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랄까. 곰팡이가 주는 혐오스러운 감각이 있더라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이유다.

 

- 다음 계획은 뭔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

= 올해는 쉬고 있다. 일종의 안식년처럼. 영화제 가서 관객들 만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충전이 된 것 같다. 내년부터는 글을 써보려고 하고 있다.

 

<곰팡이>(Walk In)

감독 박한얼 | 애니메이션 | 2024년 | 15분 | KAFA 정규과정 40기 졸업작품

 

글 정선영, 사진제공 한국영화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