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제 공동제작 현황
영화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다. 국제 공동제작을 통해 현지 관객을 더 깊이 파고 들고 현지인들에게 업계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잠재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국제 공동제작을 통해 수익률을 높여왔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해외 로케이션이다. 국제 공동제작은 문화적 다양성 실현 외에도 각국의 세제 지원(tax incentives)을 활용한 제작비 절감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영화 대본이 반드시 그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영국과 독일 등의 최첨단 제작 스튜디오를 이용하거나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처럼 시각효과(VFX) 등 후반작업 시설이 완비된 스튜디오와 협업해 정부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을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의 세액 공제율은 캘리포니아주와 조지아주가 20~30%, 뉴욕주가 30~40%인 반면, 캐나다는 39.5%(브리티시 콜롬비아주)와 34.1%(온타리오주), 오스트레일리아는 30%(주나 지역 정부가 15%까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영국은 VFX 비용 청구 시 80% 상한선을 폐지하고 제작비 세액공제율을 25%에서 34%로 인상했다.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국제 공동제작의 주요 국가들이었다. 최근 들어 헝가리 등이 합세하자 일부 유럽 국가들은 정부가 할리우드 영화 공동제작에 직접 자금을 지원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일례로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으로 영화 및 TV 제작비에 대한 세액공제 방식을 수정했다. 2021년 40%로 대폭 인상한 제작비 세액공제율에 2023년 들어 이탈리아 배우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을 고용하지 않으면 세액공제율을 30%로 낮춘다는 단서를 달았다. 아프리카 역시 모로코와 남아공이 앞장서 독특한 로케이션과 인력, 지출의 25~30%의 세제 지원을 내세워 로케이션 유치에 혈안이 되었고 아시아 주요 국가들도 로케이션 유치 정책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국제 공동제작 현황과 사례
국제 공동 제작은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국가 출신 제작사들이 협력해 공동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미국 영화계는 기업(할리우드 스튜디오) 주도로 주법에 따라 국제 공동 제작을 진행하며, 참여 제작국가가 제공하는 혜택과 조건이 명시된 공동제작 협정에 근거해 공식적인 공동제작(official co-production)을 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국제 공동제작 유형은 로케이션 촬영, 배우 캐스팅과 현지 제작인력 참여, 리메이크와 같은 지식 재산(Intellectual Property, IP)을 내세운 기획 개발이다. 공동제작 주요 파트너 국가는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콜롬비아, 체코, 헝가리, 뉴질랜드 등이다.
국제 공동제작 영화의 흥행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2023년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 상위 20위권 영화들을 살펴봤다. 미국은 컴스코어(comScore) 공식 집계를, 캐나다는 뤼미에르/OBS 집계를 참고했다. 2023년 흥행 상위 20위권 영화 중 5편이 국제 공동제작이다. 영국이 2편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 독일, 멕시코, 캐나다가 각각 1편으로 집계되었다.
<표 1> 2023년 북미 박스오피스 흥행 상위 20위
<출처: Marche Du Film 2024 (뤼미에르/OBS, 컴스코어)>
가. <바비>와 <오펜하이머>
영국이 공동제작 파트너 국가로 크레딧을 올린 영화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이다. <바비>는 전 세계적으로 14억5,000만 달러의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2023년 최고의 흥행작이다. 영화 <바비>의 글로벌 흥행은 워너브라더스 리브스덴 스튜디오의 대대적인 확장을 초래했고 2027년 완공 예정인 리브스덴 스튜디오는 앞으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본거지인 DC 스튜디오의 주요 제작 허브가 될 예정이다.
<영화 ‘바비’의 주요 배경인 바비랜드를 구현한 워너브라더스 리브스덴 스튜디오. 출처: 워너브라더스 리브스덴 스튜디오>
영화 <오펜하이머>는 영국 출신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2001년 아내 에마 토마스와 설립한 영국의 제작사 신카피(Syncopy Inc.)가 찰스 로벤의 미국 제작사 애틀라스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했다. 유니버설 픽처스가 배급했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
2023년 흥행순위 2위에 오른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는 닌텐도의 지식 재산(IP)인 슈퍼 마리오 비디오 게임 시리즈에 기반한 일본과의 합작 영화다.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캐릭터와 당시 경쟁했던 라이벌 캐릭터는 세가의 ‘소닉’이었다. 일본은 2022년 세가의 게임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혹(Sonic the Hedgehog)>의 지적 재산을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손잡고 실사 영화화해 <슈퍼 소닉 2>라는 영화로 성공시켜 흥행 순위 9위에 올렸다.
다. <존 윅 4>
라이언스게이트(Lionsgate)가 제작한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존 윅 4>는 독일이 공동 제작국가이다. 1912년 설립된 독일의 스튜디오 바벨스베르크는 <존 윅>이 1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성적에 근거해 독일연방영화위원회로부터 62만1,600유로(약 7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존 윅 4>는 독일에서 800개 이상 스크린의 정규 개봉에 앞선 수요일 미리 상영에서만 63만5,000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해 이전 작품보다 40% 높은 수익을 올렸다.
북미 박스오피스 14위에 랭킹된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라이언스게이트의 최대 흥행시리즈인 <헝거게임>의 스핀오프 영화이다. 라이언스게이트는 <헝거게임>, <트와일라잇>, <존 윅> 시리즈 등을 흥행시켰다. <헝거게임: 모킹제이> 1·2부를 연출한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캐나다에서 VFX 및 후반작업을 진행한 캐나다 합작영화이다.
국제 공동제작 지원
LA지역 로케이션 영화 촬영을 지원하는 ‘필름LA(FilmLA)’가 조사한 2017년 해외 로케이션 분석에 따르면 공동제작 국가와 편수는 캐나다(20편), 영국(15편), 오스트레일리아(5편), 프랑스(3편) 순이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기 전 공동제작이 성행했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흥행순위 100위권 영화의 미국 및 해외 로케이션을 분석한 결과다. 필름LA에 따르면 제작비가 1억 달러를 초과하는 영화의 경우 세제 지원 및 인프라 구축이 잘된 VFX 스튜디오와의 공동제작을 선호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스튜디오는 파인우드 스튜디오(Pinewood Studios)와 워너브라더스 리브스덴 스튜디오이고 뉴질랜드는 웨타(WETA) 스튜디오를 가장 많이 이용했다. 미국 내 제작 스튜디오는 조지아주(15편), 캘리포니아주(10편), 뉴욕주(6편), 루이지애나주(5편) 순으로 활용도가 높았다. 미국 영화산업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주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계 최고의 제작 허브이다.
캘리포니아 영화위원회(California Film Commission)는 2020년 7월부터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작되는 영화 및 시리즈물 제작에 소요된 공제 대상 비용의 20%까지 세액 공제해 주는 ‘영화 및 TV 세액공제 3.0 프로그램’(Film and Television Tax Credit Program 3.0)을 시행했다. 세액 공제 대상은 임금과 캘리포니아주 내에서 촬영을 위해 사용한 서비스 비용, 유형자산의 구입비와 임차비용이다. 이 프로그램은 2025년 6월 30일 종료 예정이었는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영화 및 TV 세액공제 4.0 프로그램’ 상원법안에 서명함으로써 2030년까지 연장되었다.
박찬욱 감독이 쇼러너로 제작하고 감독한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는 미국, 캐나다, 한국이 공동제작했다. 이 시리즈는 LA와 샌타 클라리타를 촬영지로 제작되었으며 2022년 7월 18일자 데드라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영화 위원회로부터 1,745만2,000달러의 세금 공제 혜택(tax credit)을 받았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전략
스트리밍 거대 기업인 넷플릭스(Netflix)와 아마존(Amazon)은 콘텐츠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제작한다. 오리지널 타이틀을 붙인 콘텐츠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제공됐고 2024년 1분기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오리지널 콘텐츠 수수료의 약 70%를 차지했다는 미디어 리서치 회사 암페어 애널리시스(Ampere Analysis)의 연구 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2021년 한국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이 같은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특정 해외 시장을 위해 제작되는 타이틀을 통해 현지화된 오리지널 콘텐츠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개척하고 전 세계적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해 현지 제작사 및 콘텐츠 제작자와 협력해 다국적 다문화 시청자들을 수용한다. 지역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사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전 세계 배급을 내세운 넷플릭스의 전략적인 파트너십은 국제적 확장을 도모하고 새로운 글로벌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자본과 배급망을 확보한 넷플릭스가 현지화 전략에 따라 현지 제작사에 자본을 투자해 콘텐츠를 제작한 후 자사 배급망을 통해 전 세계에 스트리밍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제작된 오리지널 콘텐츠는 100% 투자를 한 넷플릭스 소유가 된다.
넷플릭스에 이어 아마존 스튜디오(Prime Video & Amazon MGM Studios)가 2024년 10월 1일자로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에 일곱 번째 회원으로 합류했다. 아마존 MGM 스튜디오의 공동제작 전략은 클라우드 기반의 제작 시스템 구축과 버추얼 프로덕션이다. 아마존은 컬버 스튜디오 내부 스테이지15에 거대한 LED 촬영소 ‘볼륨월’을 설치해 로케이션과 후반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크게 줄인다.
<아마존 MGM 스튜디오 내 스테이지 15에서 설치된 볼륨 월. 출처 아마존 홈페이지>
볼륨월은 <아바타: 더 라스트 에어벤더(Avatar: The Last Airbender)> 등의 VFX를 담당한 디멘션·DNEG 스튜디오가 협업해 만든 장치다. 원하는 배경을 띄워놓고 촬영을 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한 초고화질 배경을 띄워놓을 수 있는데다 디스플레이가 깊이감을 나타낼 수 있어 마치 실제 현장에서 촬영한 듯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현장 로케이션을 위해 배우와 수많은 스태프가 이동할 필요가 없어 소요 시간과 예산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나가는 글
최근 수년 간 할리우드 산업은 영화 제작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으로 콘텐츠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한때 블록버스터 제작의 중심지였던 할리우드는 해외 시장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 제작 및 배급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으며 할리우드에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글로벌화 추세는 해외 각국 정부의 세금 감면 및 지원금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에 기인한다. 이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독립영화 제작자 모두에게 LA를 벗어나 해외 로케이션을 모색하게 했다. 캐나다, 영국, 호주 및 여러 유럽 국가는 비용 효율적인 제작 환경과 다양한 풍경을 제공해 매력적인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의 추세로 볼 때 영화와 TV 제작의 글로벌화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위축을 초래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 OTT 기반 스트리밍 기업들은 로컬 필름메이커들을 활용한 영상물 제작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 수익을 창출할 뿐 아니라, 비영어권 타이틀이 전체 시청의 30%를 차지할 만큼 글로벌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동남아 등은 넷플릭스 콘텐츠 지출의 주요 해외시장으로 부상했다. 이와 같은 미국 OTT 기업의 국제 공동제작 확대에 대응해 한국도 어떤 정책을 취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KOFIC 통신원리포트 2024_Vol.45 미국의 국제 공동제작 현황> 상세 보고서는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은선 영화진흥위원회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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