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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에서 창작으로: 한국 VFX 산업의 조용한 전환

2026.01.06
  • 출처 KoBiz
  • 조회수205

K-콘텐츠의 경쟁력은 완성작의 성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제작 인프라가 '기술 공급자'에서 'IP 창작자'로 진화하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 운영 버추얼 스튜디오 <출처 덱스터 스튜디오>

 

"가장 성공적인 VFX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시각효과 업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어 격언은 역설적이게도 VFX 기업들의 구조적 딜레마를 함축한다.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다는 것은 뒤에서 수백 명의 아티스트가 수개월간 작업한 결과물이 '투명하게' 작동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로 투명함이 VFX 산업을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하청' 영역에 머물게 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 VFX 산업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VFX 담당했던 덱스터 스튜디오가 자체 드라마로 아시아 최대 콘텐츠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고, 《파묘》와 《눈물의 여왕》의 VFX 맡은 웨스트월드가 국내 유일의 SFX 특수영상 스튜디오를 열며 올인원 콘텐츠 그룹으로 확장하고, 자이언트스텝이 투자한 애니메이션이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고 있다. 기술 서비스 제공자에서 콘텐츠 창작 주체로, 한국 VFX 산업의 좌표가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리밍 시대가 요구한 구조적 전환

지난 10년간 글로벌 미디어 산업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콘텐츠 수요가 폭증하면서 제작 일정은 단축되고 작업량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단순 외주 모델의 한계가 드러났다. 할리우드에서는 VFX 스튜디오들이 낮은 단가와 촉박한 일정에 시달리다 파산하거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국 VFX 산업은 다른 경로를 모색했다. 핵심 전략은 수직 통합이다. 덱스터 스튜디오는 VFX, DI, 사운드 디자인, 버추얼 프로덕션을 하나의 지붕 아래 통합해 현재 8개 사업부문에 330여 명의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웨스트월드도 편집 전문회사 모리와 DIT 전문회사 화력대전을 인수하고 SFX 스튜디오 '넥서스'를 오픈하며 VFX, DI, 편집, DIT, 제작사, SFX 스튜디오까지 6개 사업부를 갖춘 올인원 체제를 갖췄다.

 

웨스트월드 운영 SFX 특수영상 스튜디오 웨스트월드 넥서스 <출처 웨스트월드>

 

이러한 수직 통합 구조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다. 콘텐츠 제작의 전 과정을 내부에서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은 품질 관리와 일정 관리 양쪽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웨스트월드의 SFX 스튜디오 '넥서스' 15m 층고에 버추얼 프로덕션, 모션컨트롤 카메라 등 최신 특수 촬영 장비를 갖춰 해외 로케이션을 대체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덱스터가 자체 개발한 파이프라인 시스템 'VELOZ'는 샷 작업 시간을 50% 단축시켰다.

 

한편 자이언트스텝은 다른 방식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2017년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시장을 공략해 온 이 회사는 VFX 기술에 생성형 AI를 접목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에서 1,700컷에 AI 융합 기술을 적용했고, 라스베이거스의 세계 최대 몰입형 LED '스피어' 벤더로 등록되어 협업을 논의 중이다.

 

기술 공급자에서 IP 창작자로

더 주목할 만한 변화는 VFX 기업들이 자체 IP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덱스터의 자회사 덱스터 픽쳐스가 기획·제작한 드라마 《견우와 선녀》는 2025 6월부터 7월까지 tvN에서 방영되며 전 회차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는 글로벌 2위에 올랐다. 같은 해 12월에는 아시아 아카데미 크리에이티브 어워즈(AACA)에서 최우수 코미디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VFX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이 자체 콘텐츠 제작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웨스트월드도 제작사 '웨스트월드 스토리'를 통해 자체 IP 개발에 나서고 있다. 손승현 대표는 "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는 테크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500억 원 규모의 한국-할리우드 합작 SF 영화 《희망-파트1》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전 세계 동시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이언트스텝은 콘텐츠 투자를 통해 IP 사업에 진입했다. 이 회사가 제작 및 주요 투자사로 참여한 3D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는 2025 4월 북미 3,200개 극장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한국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90개국 이상에서 개봉 예정인 이 작품의 IP를 활용해 전시공간 등 부가사업 확장도 논의되고 있다.

 

기존의 기술 서비스 영역에서도 성과는 이어지고 있다. 덱스터가 VFX를 담당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9분간 기립박수를 받았고,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됐다. 웨스트월드가 VFX를 담당한 《파묘》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눈물의 여왕》은 tvN 역대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어쩔수가없다》 공식 포스터.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출처: CJ ENM>

 

제작 인프라의 성숙이 의미하는 것

이 변화가 갖는 함의는 K-콘텐츠 산업 전체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완성된 콘텐츠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이 지속되려면 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제작 인프라가 건강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과 배우가 있어도, VFX·사운드·후반작업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덱스터가 21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웨스트월드가 2026 IPO를 추진하며, 자이언트스텝이 2025년 흑자전환을 노리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술 서비스 수익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 IP, 인프라 투자, B2C 사업을 통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시도다.

 

물론 과제도 있다. 기술력을 갖춘 것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또한 이들 선도 기업의 성공이 산업 전체의 건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 VFX 산업이 '하청'에서 '창작'으로 이동하는 이 전환이 일부 기업의 예외적 사례로 남을지,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로 확산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한국의 VFX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이야기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고 자료

Autodesk Design & Make, "Korean VFX company Dexter Studios becomes a total content powerhouse", 2025.02.10.

덱스터 스튜디오, "Dexter Studios Delivers Immersive Visual Storytelling in Park Chan-wook's 'No Other Choice' with Cutting-Edge VFX", 2025.09.

B BLOTER, 자이언트스텝, '해외 확장전략 결실…‘AI 융합’ 효율성 강화, 2025.04.30

Korea JoongAng Daily, Westworld rising from VFX glory with Netflix to independent content, 2024.04.14

SMARTTODAY, 웨스트월드국내 유일 SFX 스튜디오 오픈  사업확장,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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