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주도 회복세와 다양성 위기 신호
지금 일본의 영화 시장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영화계 전체를 밑에서 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영화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지난 1년간의 일본 영화계의 움직임을 <KOFIC 통신원리포트>를 통해 알아본다.

158억 7,000만 엔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23년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이 지탱하고 있는 일본 영화계
2023년 일본 영화 시장은 팬데믹의 영향을 어느 정도 극복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영화계 전체의 흥행 수익은 2,214억 8,000만 엔으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이는 2019년 기록한 역대 최고 흥행 수익인 2,611억 8,000만 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2023년 흥행 수익 상위 3편이 모두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158억 7,000만 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40억 2,000만 엔),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138억 8,000만 엔)이 흥행 수익 100억 엔을 돌파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흥행 수익 점유율은 48대 52로,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를 앞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시장의 새로운 특징은 초대형 흥행작 외에도 중규모 흥행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와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가 각각 41억 6만 엔과 25억 4천 엔을 기록하며 이러한 트렌드를 보여줬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90억 엔을 돌파하며 제96회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신차원! 짱구는 못 말려 더 무비>는 시리즈 최초로 3D CG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약 24억 7,000만 엔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고,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와 하늘의 유토피아>은 43억 4,000만 엔을 기록하며 가족 관객층을 다시 불러 모았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시장 진출 성과다.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아시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한국에서는 각각 554만 명, 48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현지 시장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성과 <슬램덩크> 원작 만화의 오랜 인기가 결합된 결과로 분석된다. 이처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며 일본 영화 시장의 회복을 이끌어냈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글로벌 성공과 그 의미
반면, 일본 실사 영화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실사 영화의 흥행은 팬데믹 이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그 중 일부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장 큰 성과는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글로벌 흥행이다. 이 작품은 일본 국내에서 60억 엔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북미 시장에서 아시아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의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35명이라는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일부 대작들의 선전이 있었다. 토호의 <킹덤>(56억 엔),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와 <TOKYO MER>이 각각 40억 엔을 돌파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20억 엔을 돌파하며 칸영화제 각본상의 영예도 안았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11억 엔을 돌파하며 중장년층 관객의 극장 복귀를 이끌었다. <도쿄 리벤저스> 속편인 시리즈 두 편은 합계 50억 엔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그 외에 영화 수출 실적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넷플릭스가 제작한 <원피스>와 <유유백서>의 실사판이 전 세계적으로 송신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해외시장에서의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준 한 예시이다. 이러한 흐름은 실사 영화가 어느 정도 회복 가능성을 보였음을 의미하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에 비해 그 격차가 크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140억 2,000만 엔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23년 일본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기록적인 흥행
팬데믹 동안 침체되었던 외국 영화는 서서히 흥행 부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2022년에 <탑건 매버릭>의 역대급 흥행(137억 1,000만 엔) 추세를 2023년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이어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140억 2,000만 엔의 높은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23년 일본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과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일본 영화 시장의 국제화와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영화계의 흥행이 일본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으며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영화는 비록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비상선언>이 2억 5,000만 엔의 흥행을 기록하며 2021년 개봉작 <서복>의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영화의 일본 시장 진출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장의 다양성 측면에서의 위험 신호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회복세 속에서도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다. 애니메이션에 편중된 흥행 구조는 시장의 다양성 측면에서 위험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중소영화사들의 배급망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니시어터에서 상영된 <후쿠타무라 사건>이 2억 6,000만 엔의 수익을 올리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다. 실험적이거나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의 상영 기회가 줄어들면서, 일본 영화계의 창작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영화계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3년 일본 영화 수출 실적이 4억 8,333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도 있지만, 국내 시장의 다양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실사 영화의 경쟁력 강화와 독립영화의 상영 기회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부 대작 애니메이션에 의존하는 현재의 시장 구조는 장기적으로 일본 영화계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KOFIC 현안보고' 전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rsch/findPolicyDetail.do?boardNumber=39&policyNo=6828
글 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