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의 소형 영화관 무비랜드. 무비랜드 제공>
소형 영화관들이 제공하는 독특한 영화 관람 경험
한국의 영화관 산업이 변화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획일화된 멀티플렉스 체인을 떠나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표준화된 관람 경험에 만족하지 못한 관객들은 독창적인 콘셉트와 선별된 상영작, 아늑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소형 독립 영화관으로 향하고 있다. 고전 명작을 상영하는 복고풍 영화관부터, 식사를 곁들일 수 있는 프라이빗 상영룸까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영화관들이 관람 경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무비랜드에서 먼지 쌓인 보석을 발굴하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소형 영화관 무비랜드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다. 3층 규모의 리모델링 건물에 들어선 무비랜드는 2024년 2월 개관 이후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넘어, 영화와 이야기 중심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소호 관장은 무비랜드가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먼지 쌓인 보석을 발굴하는 곳'으로 기획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된 영화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면 보석 같은 매력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소호는 "극장이란 공간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며 "오래된 영화도 새로운 시선에서 보면 보석 같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달 새로운 큐레이터를 선정해 그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무비랜드는 약 2년간의 기획, 설계, 건축, 인테리어 준비를 거쳐 완성됐다. 소호 관장은 "전체 준비 기간이 약 2년 정도 걸렸다"고 설명했다. 공간 구성은 단관 극장이 성행하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1층에는 매표소와 간식 코너,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 숍이 마련돼 있다. 관객들은 티켓을 구입한 후 2층 라운지에서 대기하는데, 이 공간은 선별된 오브제와 영화 포스터로 채워져 상영 전 기대감을 높인다. 3층에는 상영관이 위치해 있다.
무비랜드는 최신 블록버스터 대신 큐레이션된 상영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호 관장은 "무비랜드는 독창적인 디자인의 티켓, 포스터, 전시,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관람 경험을 확장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채널 'MoTV'와 팟캐스트 '무비랜드 라디오'를 통해 큐레이터들이 상영작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성과로 이어졌다. 소호 관장은 "개관 첫해인 2024년 2월부터 1년간 평균 매진율이 83%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관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식 속에서도 초기에 예상했던 50%를 훌쩍 넘는 수치였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재정적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지만 장기적 수익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소호 관장은 "무비랜드는 독창적인 공간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수익성 면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무비랜드는 외국인 관객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소호 관장은 "외국인 방문객도 있다"며 "1층 기념품 숍과 간식 코너는 예약 없이 이용 가능하고, 2층 라운지와 3층 상영관은 웹사이트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화성시 동탄의 소형 영화관 '안녕채 X 모노플렉스'. 모노플렉스 제공>
프라이버시와 편안함을 원하는 관객 증가
관객들은 기존 멀티플렉스와 다른 특별한 경험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프라이버시와 편안함에 대한 수요가 있다. 메가박스의 부티크 상영룸은 이러한 수요를 겨냥한 대표 사례다.
서울에서 부티크 상영관을 예약했다는 이 모씨는 "아이의 11번째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어했다"며 "찾아보니 부티크가 있어 일반 상영관보다 가격은 높았지만 예약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약 10명의 아이들이 함께 영화를 관람했으며 좌석도 매우 편안했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며 "자주 이용하지는 않겠지만 특별한 날에는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서비스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화성시 동탄의 소형 영화관 '안녕채 X 모노플렉스'. 모노플렉스 제공>
모노플렉스도 새로운 영화관 형태를 지향하며, 차별화된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온라인에서 큰 주목을 받은 곳은 화성 동탄의 ‘안녕채 X 모노플렉스’다. 이곳은 한옥 스타일의 공간에서 국밥 등 한식을 곁들여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내부 인테리어는 전통 건축 요소에 나무와 식물 등 자연적인 요소를 가미해, 차분하고 캠핑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좌석은 4인용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해 좌석마다 식사용 테이블이 제공된다.
이처럼 독특한 콘셉트 덕분에 데이트 장소나 가족 나들이 명소로 주목받고 있으며, SNS를 통해 긍정적인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한 온라인 후기에는 "아이와 함께 오기 좋은 공간이며 아이들 영화를 볼 때마다 찾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초 그랑자이 단지 내 영화관 CGV 살롱 모습. GS건설 제공>
영화관, 이제는 집 안으로
영화 관람 공간에 대한 특별한 니즈는 주거 공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기존의 골프연습장, 피트니스센터, 식당 외에도 프라이빗 영화관을 새로운 부대시설로 도입하고 있다. 이는 외출 없이 고품질의 영화 관람을 원하는 입주민들의 수요를 반영한 것으로, 최근 수익성 저하로 문을 닫는 멀티플렉스들과 대조적이다.
2021년 6월 완공된 서초 그랑자이는 국내 최초로 CGV 살롱을 단지 내에 설치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관은 CGV 프리미엄 기준에 맞춘 26석 규모로, 입주민은 아파트 전용 앱을 통해 예약하고 이용료는 관리비에 포함된다. 디에이치 자이 개포는 8석 규모의 DH 시네마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반 프리미엄 영화관 대비 약 3분의 1 수준의 가격으로 상영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 영화산업 관계자는 "소형 영화관의 인기 증가는 관객의 니즈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스마트폰이나 개인 디바이스로도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영화관은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닌 특별한 경험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블록버스터 상영 중심의 멀티플렉스는 여전히 역할이 있겠지만, 소형 영화관들은 관람을 넘어 기억에 남는 체험으로 영화 관람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백병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