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와 AI의 결합, 영화 산업의 새로운 경쟁 공식을 제시하다

영화 《국민연금》 포스터 <출처 홍어필름>
45개 이상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세계 장르영화 팬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손호승 감독이 이번에는 인공지능(AI)을 손에 들고 유럽 장르영화계의 심장부를 두드렸다. 그의 단편영화 두 편, 《국민연금》과 《음복식당: MSG》가 2026년 2월 27일 포르투갈 포르투(Porto)에서 개막하는 판타스포르토(Fantasporto)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동시 초청된 것이다. 한국 단편영화가 이 무대에 오른 것은 2012년 최시영 감독의 《도마뱀 소녀》 이후 약 14년 만이다. 전 세계 75개국 900여 편의 출품작 중 22편만이 경쟁부문에 선정되는 좁은 문을, 한 명의 감독이 두 편의 작품으로 통과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두 작품 모두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됐다는 점이다. 이는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의 핵심 주제와도 부합하는 것으로, 판타스포르토 측은 2026년 행사 규정에서 "미학적·주제적으로 질 높은 영화를 선별하고, 새로운 형식과 방법론을 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손호승 감독의 두 작품은 이번 영화제에서 검증된 장르영화 감독의 독자적 세계관과 새로운 영화 제작 도구의 결합이 어떤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손호승 감독, ‘한국형 블랙 미러’ 구현 목표
손호승 감독은 단편영화 《윌유컴업?》으로 45개 이상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장르적 완성도를 입증한 바 있다. 그가 현재 개발 중인 《언더》는 ‘한국형 블랙 미러’를 지향하는 8부작 앤솔로지 드라마로, 서울의 뒷골목, 반지하 57번지에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잔혹한 이야기 8편을 엮어낸다. 미국의 공포영화 유통 플랫폼인 ‘13HORROR.COM’은 《언더》 시리즈의 대표 에피소드인 《반지하 57번》과 《도그이트맨》을 두고 "깊이 불편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 "사회적 외면에서 탄생한 섬뜩한 은유"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판타스포르토에 초청된 《국민연금》 역시 《언더》 시리즈의 일부이다. 동 영화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 자체를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무대로 삼아, 개인이 국가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블랙코미디로 드러낸다. 제작사 홍어필름(Hongeo Films)은 동 영화에 대해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생존을 블랙유머와 풍자로 교차시켰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장르영화 산업 프로그램인 ‘NAFF(아시아 판타스틱 영화 제작 네트워크)’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 《음복식당: MSG》포스터 <출처 홍어필름>
또 다른 초청작 《음복식당: MSG》는 현재 손호승 감독이 장편영화로 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단편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별점, 리뷰, 평가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는 감정과 노동의 구조를 블랙코미디 공포 형식으로 풀어냈다. 동 작품은 이미 북미, 유럽, 호주 등 주요 장르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데, 이는 글로벌 장르영화 팬덤이 손호승 감독의 서사와 미학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는 ‘도구’… 창작 주체는 여전히 ‘감독’
한편, 최근 한국 영화 산업 전반에서 AI를 활용한 영화제작 방식이 새로운 기회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Bloomberg)는 "한국 영화 산업이 AI 기술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건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여러 영화 스튜디오가 AI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영화 《킹 오브 킹즈》를 제작한 한국 모팩스튜디오(Mofac Studio)는 최근 AI 기반 영화 제작 플랫폼 구축에 430만 달러를 투자했고, 메디테이션 위드 어 펜슬(Meditation with a Penci) 역시 홍콩 영화 《영웅본색》 리메이크에 AI 보조 도구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손호승 감독의 판타스포르토 초청 사례는 향후 AI가 영화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