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2억원 규모 지원 확대의 성과와 구조적 개선 방향

영화진흥위원회 본사 전경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홈페이지가 뜨겁다. 기획개발지원 작가 부문에 815편,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 장편 극영화 부문에 338편이 몰렸다. 그러나 이는 한국영화의 활황이라기 보다는 위기의 반증으로 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객수는 2019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위축됐고, 연간 40~50편에 달하던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의 개봉 편수는 30편대로 줄었다. 대형 투자배급사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영진위는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위한 거의 유일한 창구가 됐다.
지원 확대, 그리고 구조적 딜레마
영진위는 영화산업의 위기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26년 전체 지원 사업 예산을 전년 대비 320억원 늘린 882억원으로 확대했다. 기획개발지원 예산은 80억원 규모로 강화됐고,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 지원은 99억원에서 198억원으로 약 두 배 늘었다. AI 기반 영화 제작 지원과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도 52억원 규모로 신설해 기술 변화와 글로벌 협력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열었다. 기획개발에서 제작, 유통까지 전 단계를 아우르는 구조다.
이에 따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처음 시행된 중예산 제작 지원에서 선정된 9편 중 6편이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은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됐다. 장훈 감독의 사극 《몽유도원도》는 대형 투자배급사 플러스엠과 손잡고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영진위 지원을 자진 취하하고 넷플릭스로 선회했고, 변영주 감독의 《당신의 과녁》은 3개월 내 메인 투자사를 확보하지 못해 철회했다. 배우 캐스팅과 투자 유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영화 산업의 시간 구조와, 비교적 단기간 내 집행을 요구하는 지원 제도 사이의 불일치가 핵심 원인이다. 독립영화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영화인연대 백재호 공동대표는 최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펀딩도 받고 투자도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지적하며, "빠르게 매년 영화를 공급한다고 관객이 늘어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영진위가 풀어야 할 과제는 ‘시간 구조’의 재설계다. 백재호 대표는 “현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2~3년 범위의 단계별 집행을 허용하는 '다년 제작 트랙'의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을 연차별로 나눠 집행하고, 중간 평가를 통해 지속 여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기획·개발 단계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원 다변화 역시 시급한 과제이다.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는 2018년부터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사업자에 기여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세율을 5.15%까지 올렸다. 영국영화협회(BFI)가 제작 예산의 최소 1%를 인력 양성에 투자할 것을 권고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2022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에 필요한 공공기관의 모델로 영진위를 거론한 적이 있다. 한국이 가진 공공 지원 체계의 가능성을 외국에서도 주목한 셈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다년도 집행 구조의 도입, 중예산 지원 정책 제도 개혁 등 예산이 작동하는 시간과 구조를 산업의 현실에 맞춰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참고자료
씨네21, “[특집]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합니다 - 영화계 종사자들이 말하는 지금 필요한 정책들”, 2026.03.06
씨네21, “[특집] 영화인들이 영진위에 묻다 - 영진위의 운영 기조부터, 상세한 사업 설명까지”, 2026.03.06
씨네21, “[특집] 영진위에 기대를 건다 - 한국영화의 위기 속에서 중요성이 더욱 커진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과 영화진흥위원회의 역할론”, 2026.03.06
씨네21, “[특집]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사업 일람 영화 정책 현황 점검과 제언”, 2026.03.06
씨네21, “[특집] 2026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총정리”, 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