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가 선택한 '한국적 가족 서사'의 힘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관객과 소통 중인 김미조 감독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김미조 감독의 《경주기행》이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Florence Korea Film Fest)에서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성과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영화가 문화적 번역 없이도 유럽 관객들의 정서적 공감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나는 네 모녀의 이야기다. 이들의 행선지는 다름아닌 경주. 《경주기행》의 ‘경주’는 지명과 인명의 중의적인 의미이다. 엄마 옥실 역의 이정은, 첫째 장주 역의 공효진, 둘째 영주 역의 박소담, 셋째 동주 역의 이연이 열연을 펼친다. 이정은과 박소담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후 다시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경주기행》 포스터 <출처 Kobis>
《경주기행》은 장르적으로는 '가족 복수극'이라는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본질은 ‘복수’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축적되는 ‘감정의 흐름’에 있다. 장은영 피렌체 한국영화제 부위원장은 초청 당시 이 영화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날카로운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라 평가하며, 복수 영화의 관습적 틀을 깨는 점에 주목한 바 있다.
피렌체 현지에서 흥미로운 반응 중 하나는 영화의 배경인 '경주'라는 도시에 대한 것이었다. 장은영 부위원장은 "해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의 모습이 이탈리아 관객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이미 유명한 도시가 아닌, 고즈넉한 역사 도시 경주가 오히려 유럽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 지점은 한국영화의 해외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글로벌 관객에게 익숙한 대도시 배경이나 보편적 공간 설정이 해외 소구력의 전제 조건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화적 특수성이 선명한 공간이, 그것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발견의 즐거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주기행》 스틸 <출처 네이버 영화>
김미조 감독은 데뷔작 《갈매기》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과 제9회 들꽃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갈매기》가 중년 여성의 성폭력 피해라는 사회적 이슈를 가족 서사 안에서 다뤘다면, 《경주기행》은 상실과 복수라는 보다 극적인 프레임 위에서 주제 의식을 확장한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를 중심축으로, 여성 가족 구성원의 내면을 섬세하게 탐색한다. 김미조 감독의 작가적 서사는 이제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주목할 만한 궤적을 그려가고 있다.
참고자료
텐아시아, "이정은·공효진 '경주기행', 피렌체 한국영화제 관객상 수상", 2026.03.31
미디어펜, "이정은과 공효진, 이탈리아 피렌체를 매료시키다", 2026.03.31
뉴스1, "'경주기행',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관객상 쾌거",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