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경쟁작은 없었지만…다양한 형식과 세대로 존재감 드러낸 한국 영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라시네프 부문 포스터 <출처 연합뉴스>
황금종려상을 향한 경쟁, 스타 감독의 레드카펫 — 국제 영화계에서 칸을 언급할 때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2025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그 익숙한 공식 바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장편 경쟁부문 진출작 없이도, 한국 영화는 다큐멘터리·XR(확장현실)·학생 단편이라는 세 갈래의 경로로 칸의 문을 두드렸다.
세 이슈 중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이명세 감독의 다큐멘터리 《란 12.3》이다. 이 작품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맞서 국회로 향한 시민들의 움직임을, 인터뷰나 내레이션 없이 음악과 영상만으로 기록했다. 200여 명의 시민·국회의원·보좌진이 남긴 영상과 사진,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재구성했으며, 오는 5월 칸 필름마켓을 통해 해외 영화 관계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계엄 사태 당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전 세계 주요 매체들이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사건을 넘어 민주주의의 보편적 서사로 읽힐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시의성 있는 정치 다큐멘터리의 국제 유통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우현주·박지윤 작가의 우박스튜디오가 제작한 《VOOOOOO---PEEEEEE---》의 한 장면 <출처 MAXMOVIE>
장르의 확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우현주·박지윤의 XR 작품 《VOOOOOO---PEEEEEE---》가 제79회 칸 영화제 몰입형(Immersive)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칸의 몰입형 부문은 2024년 제77회 영화제에서 처음 신설된 섹션으로, VR·AR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관객을 전혀 다른 세계와 서사로 이동시키는 몰입형·인터랙티브 작품들을 경쟁 형식으로 선보인다. 기술과 인간의 몸, 감각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 작품은 두 작가가 직접 출연해 몸과 기술의 경계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레지던시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두 작가의 초청은, 공공 예술 지원 인프라와 실험적 미디어 아트의 결합이 국제 무대에서 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학생 단편 경쟁부문인 라 시네프(La Cinef)에는 두 편의 한국 관련 작품이 이름을 올렸다. 홍익대 재학생인 최원정 감독의 《새의 랩소디》는 전 세계 2,750편의 출품작 가운데 선정된 19편에 포함됐다. 손에 잡히지 않는 새를 좇는 인간의 욕망을 통해 내면의 탐색을 그린 이 작품은, 보편적인 주제의식과 개인적 서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심사위원단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컬럼비아대에 재학 중인 한국계 감독 나딘 미송 진의 《사일런트 보이시스》도 함께 초청됐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가족의 단절과 생존을 17분 안에 담아낸 이 작품은,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한국적 정서를 풀어낸다. 서로 다른 배경과 언어를 가진 두 작품이 나란히 초청된 것은, 제도권 안팎에서 성장한 한국 영화의 차세대 창작자들이 이미 국제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2019) 이후,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한국 영화의 해외 성과는 종종 ‘다음 봉준호’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소비돼 왔다. 그러나 2025년 칸 영화제에서 드러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이전과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특정 감독이나 한 편의 화제작에 집중되기보다, 서로 다른 형식과 세대, 주제를 지닌 작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국제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영화가 하나의 ‘예외적 성공 사례’를 넘어, 보다 다층적인 창작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참고자료
MAXMOVIE, "다큐 영화 '란 12.3', 칸 영화제 필름마켓서 선보인다", 2026.04.26
MAXMOVIE, "미디어 아티스트 우현주·박지윤 작가의 신작, 칸 영화제 몰입형 경쟁부문 초청", 2026.04.26
연합뉴스, “홍익대 최원정 감독 '새의 랩소디' 칸영화제 학생부문 초청”,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