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의 AI 논쟁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AI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세울 것인가’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 첫날 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판의 미로》 20주년 복원판 상영 직후 마이크를 잡고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Fuck AI.” 객석은 긴 박수로 화답했고,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는 이를 올해 칸의 첫 정치 선언이라 격상시켰다. 그러나 그 거룩함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델 토로가 AI를 저주한 그 무대를, 칸의 헤드라인 기술 스폰서인 메타와 중국 클링AI가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의 공식 입장은 생성형 AI 주도 영화의 경쟁부문 배제였다. 하지만 같은 영화제의 필름 마켓에서는 95분짜리 완전 AI 장편 《헬 그라인드》가 존재감을 드러냈고, AI 영화만을 다루는 별도의 영화제 ‘WAIFF’도 같은 시기에 열렸다. 한쪽에서 거장이 AI를 저주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AI가 영화제 운영비를 대고, 또 다른 곳에서는 AI 영화가 자체 권위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이다.
세 거장, 세 갈래 길 - 그리고 한국의 선택
이 분열은 거장들의 입장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델 토로는 신작 《프랑켄슈타인》에서 실제 세트를 짓고 의상에 손으로 자수를 놓으며, 손의 흔적이 영화의 본질이라는 신념에서 AI를 거부한다. 반면 스티븐 소더버그는 존 레넌 다큐멘터리의 약 10%를 메타의 AI로 생성하고, 진짜 문제는 AI 사용이 아니라 그 사실을 숨기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피터 잭슨은 AI를 또 하나의 특수효과로 보며 적절한 규제를 전제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셋 모두 진심이고, 누구도 위선자가 아니다. 이 충돌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 가지 답이다.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John Lennon: The Last Interview' <홈페이지 캡쳐>
한국은 이 논쟁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지난 5월 국내 최초 생성형 AI 장편 《아이엠 포포》가 개봉했다. 관객은 564명에 그쳤지만, 감독 한 사람이 두 달 만에 장편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1인 영화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 주목할 것은 정부의 적극적 움직임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AI 기반 장·단편 38편을 선정·지원하는 사업을 신설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역대 최대인 198억 원을 AI 콘텐츠 제작에 투입한다. 콘진원 집계로 방송·영상 분야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1년 새 4%에서 30.8%로 급증했다.
배경에는 냉혹한 경제 논리가 있다. 델 토로가 AI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거부해도 영화를 만들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청년 감독에게 AI는 제한된 예산 안에서 장편을 완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선택지다. 거부의 고결함과 수용의 절박함은 결국 하나의 불평등이 만들어낸 두 갈래다.
제작의 문턱은 낮아졌다, 규칙은 어디에
그러나 한국 AI 영화의 진짜 장벽은 기술도 자본도 아니다. 제도다. AI는 제작의 문턱을 낮췄지만, 배급은 여전히 전통적 제작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많은 플랫폼이 AI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정책을 갖추지 못했다. 학습 데이터에 사용된 원작자에게 무엇을 돌려줄지, AI에 대체되는 스태프의 고용을 어떻게 보호할지, 표준계약과 배급 심사에 AI를 어떻게 명시할지 — 2025년 K-콘텐츠 수출액 149억 달러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동안, 이 규칙들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경계해야 할 함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는 예술의 죽음’이라는 낭만적 거부로, 사실상 가진 자의 사치다. 다른 하나는 ‘AI는 창작의 민주화’라는 기술 낙관으로, 노동의 소멸을 해방으로 포장한다. 제작의 민주화가 곧 배급의 민주화는 아니다. 칸은 욕설을 외치면서도 AI 기업의 돈을 받았고, 한국은 활용률 30%를 돌파하면서도 규칙은 세우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인간 영화의 존엄을 외치는 일은 쉽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무대 뒤 광고판을 직시하고, 어떤 규칙을 세울지 묻는 일이다.
참고 자료
연합뉴스, “[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AI 영화, 도구 아닌 규칙 공백이 문제” (2026.6.19)
영화진흥위원회, “2026년 AI 기반 영화 제작지원 단편 부문 사업공고” (2026.1.29)
조선일보, “AI 영화, 명령문 1만번 넣어야 25분… 아직 ‘손’ 많이 가” (2026.5.27)
연합뉴스, “영화계 깊숙이 파고드는 인공지능…100% AI 영화도 등장” (2026.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