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다양한 어머니 얼굴
“옘병∼.” 걸쭉한 입담의 ‘욕쟁이 할머니’는 김수미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관객들은 그녀가 말 문을 열 때마다 웃고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전라도 군산이 고향이라 나는 말귀 알아들을 때부터 욕 얻어먹으면서 자라왔어요. 상스럽고 나쁜 게 아니라 그냥 문화예요. 우리 어머니도 나한테 늘 ‘창세기를 터뜨려 죽일 년, 이 오살할 년’이라고 했다고. 하도 듣고 자라니까 애정표현도 자연히 욕으로 하게 되죠. 금방 장독에서 꺼낸 묵은지의 맛이랄까.” (2015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모두의 어머니로 웃고 울며 살아온 배우 김수미의 영화 속 얼굴을 떠올려 본다.
1. <가문의 영광> 시리즈(2005~2023)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2000년대 한국 조폭 코미디 시대를 이끌어간 작품이다. 1편과 2편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을 거두며 시리즈는 총 6편이 만들어졌다.
배우 김수미는 2편인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부터 해당 시리즈에 합류한다. 조폭 가문의 수장인 '홍덕자' 역으로 등에 문신이 있는 백호파 보스를 표현했다. 착착 감기는 욕설로 웃음의 절반 이상을 쥐는 카리스마를 뿜어내었다. 2편은 명절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어 김수미는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 <가문의 영광4-가문의 수난>, 지난해 개봉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까지 시리즈를 함께 했다.

시리즈 2편인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한 장면)
2. <마파도>(2005)
2005년에 나온 코믹 영화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데뷔작이다. 160억을 들고 잠적한 한 여자를 찾아 모범 건달 재철(이정진)과 비리 형사 충수(이문식)는 지도에도 없는 수상한 섬 ‘마파도’로 낚시꾼으로 위장, 잠복해 들어간다. 그 섬에는 다섯 할머니들만 산다.
두 남자와 다섯 할매가 빚어내는 문화, 성, 세대의 충돌은 상상을 뒤집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며 색다른 웃음을 전한다. 김수미 배우는 다섯 할매 가운데 욕쟁이 진안댁 역을 맡았다. 신기가 있는 듯한 진안댁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두 남자를 기절초풍시킨다. 엽기 코미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마파도>의 한 장면
3. <맨발의 기봉이>(2006)
2003년 KBS <인간극장>에서 사연이 소개됐던 8살 지능의 장애인 엄기봉씨의 실화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김수미는 180도 연기변신을 시도한다. 지적장애 아들을 둔 순진한 촌부로 이번에는 울리는 역할이다.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일용 엄니랑 비슷할까봐. 그런데 이번 역할은 일용 엄니와는 성격 자체가 달라요. 일용 엄니의 가벼움을 많이 침잠시켰달까.” 개봉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기봉이 엄마는 일용 엄니와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기봉이가 억울하게 얻어맞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는 엄마의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맨발의 기봉이>의 한 장면
4.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강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관록의 배우들이 펼치는 노년의 사랑 이야기이다. 가는귀가 먹어 항상 버럭하는 만석(이순재), 폐지 줍는 송씨(윤소정), 치매에 걸려 아이가 된 순이(김수미), 아내바라기 군봉(송재호). 이제 피어오른 노년의 사랑과 죽음을 선택하는 노부부의 사랑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김수미 배우를 재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잠시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 순간의 김수미의 연기는 세월을 초월한 사랑의 모습이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때 찍은 캐릭터 포스터가 고인의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따스한 목도리에 장갑을 착용한 채로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에 가슴이 시리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캐릭터 포스터
5. <헬머니>(2015)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 <헬머니>에서 김수미는 강렬한 원맨쇼를 보여준다. 힙합 서바이벌 예능 열풍을 김수미 배우에게 입히니 '욕배틀'이라는 코믹한 배경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답게 김수미 배우의 욕 솜씨가 108분을 시종 리드한다. 그 끝맛은 소시민의 울분을 풀어주는 데 더 방점을 둔 휴먼 드라마가 된다. 영화 <헬머니>에서 김수미가 연기하는 이정순 할머니의 거침없는 입담은 살아오면서 쌓인 애환과 분노를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관객들에게 대체할 수 없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헬머니>의 한 장면
“난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굳바이(굿바이) 굳바이/꽃피는 봄도 일흔 번 넘게 봤고 함박눈도 일흔 번이나 봤죠. 굳바이 굳바이/혹여나 누군가가 내 잔디 이불 위에 나팔꽃씨를 뿌려주신다면 가을엔 살포시 눈을 떠 보라빛(보랏빛) 나팔꽃을 볼게요. 잘 놀다가요. 굳바이 굳바이” _ 고인이 생전에 직접 작성한 유서곡 ‘나팔꽃’ 가사
글 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