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공개 방식에 관한 새로운 모델 제시할지 관심
디즈니가 결국 자사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에서 신작 영화 <뮬란>을 공개하기로 했다. 한국을 포함해 디즈니플러스가 출시되지 않은 지역에서만 극장 개봉을 진행한다. 밥 차펙 디즈니 CEO는 <뮬란>의 OTT 직행이 “일회성”이며 “극장 영화의 공개 방식에 관한 새로운 모델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버라이어티』는 8월 4일(현지 시간) 기사에서 이번 방침은 ‘극장들이 빠른 시일 내에 블록버스터 영화에 걸맞은 규모로 안전하게 재개관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제작사들의 믿음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징후’라고 평가했다. 디즈니에 앞서 미국 극장 체인 1위 AMC가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90일로 책정된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을 17일로 단축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도 극장 개봉 모델을 둘러싼 큰 변화였다. 디즈니의 선택을 중심으로 할리우드 극장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살펴본다.
디즈니와 극장의 기대주 <뮬란>의 악재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영화 <뮬란>은 전 연령대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극장이 기대하는 수익도 컸다. 『버라이어티』는 타깃 관객층만 놓고 볼 때 <테넷>보다 극장 수익에서 기대하는 바가 큰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뮬란>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3월 27일로 극장 개봉일을 정하고, 3월 9일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대규모 레드 카펫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시사회 3일 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영화 개봉이 어려워졌다. 디즈니는 8월 4일, 개봉 방식을 최종적으로 확정, 발표하기 전까지 수차례 개봉을 연기했다.
디즈니는 <뮬란>의 대규모 전투신과 화려한 세트, 의상 등을 강조하며 관객들의 극장 경험을 강조해 왔다. 지난 6월, 디즈니가 <뮬란> 개봉일을 세 번째 연기하자 앨런 혼과 앨런 버그먼 디즈니스튜디오 공동 대표는 영화를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짚었다. 두 대표는 당시 성명을 통해 “(<뮬란>의) 니키 카로 감독과 우리 출연진, 제작진은 극장 경험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아름답고, 거대하며,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어냈으며, 전 세계 관객들과 큰 스크린에서 이 같은 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팬데믹으로 디즈니플러스에 대한 의존도 높아져
<뮬란>은 제작비만 2억 달러 이상이 들었으며 마케팅과 홍보 활동에도 수백만 달러가 투입됐다.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 위해 높은 박스오피스 흥행 성적이 필요하다. 팬데믹으로 정체된 상황에서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디즈니가 택한 것이 OTT 직행이다. 앞서 VOD 직행을 택한 유니버설의 <트롤: 월드 투어>, 워너 브라더스의 <스쿠브> 등과 달리, 디즈니는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서만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에 디지털 대여 이윤을 디즈니가 오롯이 가질 수 있다.
더불어 전문가들은 디즈니의 이번 결정이 디즈니플러스에 대한 회사의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고 있다. 디즈니는 테마파크 사업부터 영화관, 소매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오프라인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 하나, OTT 사업에서만큼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6월 말 기준으로 디즈니가 보유한 디즈니플러스, 훌루, ESPN플러스 전체 유료 구독자 수는 1억 명을 돌파했다. 이 중에서도 디즈니플러스는 6,050만 명을 기록하며 5년 목표치를 출시 9개월 만에 달성했다. 디즈니는 OTT 사업에 힘을 싣기 위해 내년에 글로벌 OTT 출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차펙 CEO는 <뮬란> 같은 기대작을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소개하는 것이 “디즈니플러스에 가입하기 위한 상당히 큰 자극제 역할을 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뮬란> OTT 직행, 소비자 반응 미리 살펴볼 기회
디즈니는 <뮬란>을 디즈니플러스에서 ‘프리미엄 가격’으로 공개한다. 미국을 비롯한 지역에서 소비자들은 <뮬란>을 보려면 디즈니플러스의 월 구독료 6.99달러(약 8,290원) 외에 29.99달러(약 3만 5,570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 가격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디즈니는 대부분 시장에 약 26달러의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디즈니는 이번 기회를 통해 극장에서 독점 개봉할 예정이었던 영화에 소비자들이 돈을 지불할 때 얼마만큼을 낼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버라이어티』는 디즈니가 극장에 등을 돌리지 않으며 극장의 독점 개봉 권리를 존중한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지만 동시에 <뮬란>을 시작으로 개봉을 미룬 작품들의 스트리밍 플랫폼 직행을 고려하며 적절한 금액과 방식 등을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만약 <뮬란>의 VOD 성적이 긍정적이라면 이 같은 개봉 방식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라이어티』에 의하면, 디즈니가 테스트하고 있는 프리미엄 VOD 공개 방식은 다른 스튜디오가 해왔던 VOD 공개 방식과 성격이 다르고, 잠재적 수익도 더 높다. <뮬란>의 프리미엄 가격은 유니버셜이 <트롤: 월드 투어>에 매긴 VOD 이용료보다 10달러 정도 더 높으며, 프리미엄 요금 위에 구독료를 더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정도의 금액이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다가갈지, 디즈니로서는 판단이 필요하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이 금액은 2011년 유니버설이 <타워 하이스트>를 개봉 3주 만에 케이블 가입자들에게 60달러에 제공하려다 극장의 반대로 계획을 포기한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유니버설과 홀드백 단축한 AMC, 디즈니의 선택 존중
디즈니가 <뮬란>의 OTT 직행 소식을 발표하기 며칠 전, 전통적인 극장 개봉 모델에 큰 변화를 가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극장 체인 1위 AMC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일부 작품을 극장 개봉 17일 만에 홈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에서 공개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 3월, 유니버설이 신작 <트롤: 월드 투어>를 극장 개봉 없이 VOD 플랫폼으로 보내면서 유니버설의 신작들을 보이콧했던 AMC인 만큼 시장이 받은 충격은 컸다. 당시 유니버설은 <트롤: 월드 투어>의 미국 PVOD 상영료로 1억 달러를 벌어들인 반면 AMC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회사의 기반을 흔들 정도의 재정 악화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AMC와 유니버설은 이 계약이 영화 배급에 있어 중요한 변화라고 소개했지만, 리걸과 시네마크와 같은 다른 체인점들은 새로운 모델에 대해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마크 조라디 시네마크 CEO는 “지나치게 단축된 극장 상영 기간은 영화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밝혔고, 리걸 시네마의 무키 그리딩거 CEO는 전통적 극장 개봉 창구를 존중하는 영화만 상영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네마크와 리걸의 스크린 수를 합치면 미국에서만 약 11,700개로, 이는 AMC가 소유한 8,000개보다 더 많은 숫자다. 따라서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홀드백 모델이 무너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디즈니는 할리우드의 많은 메이저 스튜디오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극장 상영을 중시해온 제작사 중 한 곳이다. AMC의 애덤 애런 CEO는 “<뮬란>의 VOD 직행으로 AMC가 실망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AMC는 더 이상 디즈니의 친구가 아니다. 두 회사 모두 사업을 하는 것일 뿐이며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AMC와 마찬가지로 디즈니는 수익 압박을 받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수익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뮬란>이 있든 없든 디즈니의 작품들로부터 수익을 벌어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이해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