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작사의 기획·제작 역량이 베트남 현지 소재와 결합했을 때, ‘완성작 수출’을 넘어선 새로운 수익 모델이 열린다.
베트남 영화 《화씨저택》 포스터.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서울의 봄》과 《내부자들》을 만든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최신 흥행작은 한국 영화가 아니다. 베트남 호치민에 실존하는 저택의 괴담을 소재로 한 현지 공포영화 《화씨저택》(LẦU CHÚ HỎ)이다. 6월 12일 베트남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일주일 만에 관객 5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3주 만에 누적 매출 700억 동(약 40억 원)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하이브미디어코프가 해외 투자·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선 첫 작품으로, 한국 제작사의 기획·제작 역량이 현지 소재와 결합해 만들어낸 성과다.
한국 노하우, 베트남 괴담을 만나다
《화씨저택》은 하이브미디어코프와 런업컴퍼니의 베트남 법인 런업 베트남이 공동 제작했다. ‘99개의 문을 가진 저택’, ‘흰옷을 입은 여인의 유령’ 등 호치민 도심의 실존 건축물에 얽힌 도시 괴담을, 베트남 최초의 파운드 푸티지(등장인물이 직접 촬영한 영상 형식) 공포영화로 풀어냈다. 1994년생 신인 흥 짤 감독의 과감한 연출과 무명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현지 관객의 입소문을 타다. 베트남 MoMo 플랫폼에서 8.6/10(5천여 명 평가)의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흥행은 산발적 실험이 아니다. 런업컴퍼니는 2023년 싱가포르, 2024년 베트남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며 체계적으로 동남아 시장을 공략해 왔다. 지난해에는 《위대한 소원》의 리메이크작 《마지막 소원》으로 베트남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올해 5월에는 《지옥으로 가는 성형외과》, 6월에는 《화씨저택》을 잇달아 공개했다. 과거 한국 콘텐츠를 그대로 수출하는 방식이 주를 이뤄다면, 이제는 현지 문화와 정서를 반영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것이 새로운 성장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화씨저택》이 같은 시기 베트남 극장가에서 《군체》와 나란히 경쟁했다는 점이다. 6월 베트남 박스오피스는 베트남 공포영화 Ma Xó(142억 동), 한국 좀비 스릴러 《군체》(57억 동, 2026년 베트남 한국영화 1위), 그리고 《화씨저택》이 동시에 상위권을 점령하는 이례적 구도였다.
《군체》형이 한국 영화의 브랜드 파워에 의존한다면, 《화씨저택》형은 제작 역량 자체를 현지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한국 영화의 동남아 진출에 두 가지 공식이 공존하고 있다.
두 가지 동남아 공식
이 구도는 한국 영화의 동남아 진출에 두 가지 경로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군체》형 — 한국에서 만든 영화를 동남아 극장에서 흥행시키는 ‘완성작 수출’ 모델이다. 다른 하나는 《화씨저택》형 — 한국 제작사의 기획·제작 노하우로 현지 영화를 만드는 ‘프로덕션 수출’ 모델이다. 전자가 한국 영화의 브랜드 파워에 의존한다면, 후자는 제작 역량 자체를 현지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다만 과제도 남는다. 《화씨저택》은 현지에서 각본의 깊이 부족과 결말의 완급 조절에 대한 아쉬움이 제기됐다. 현지화 전략이 장르적 완성도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베트남 영화국이 공포영화 과다에 대한 공문을 발행(6월 19일)한 것은, 호러 장르에 집중된 현지화 전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화씨저택》이 연 ‘프로덕션 수출’의 길이 호러를 넘어 다른 장르로 확장될 수 있을 때, 이 모델은 비로소 하나의 산업적 공식이 된다.
참고 자료
문화일보, “‘서울의 봄’ 제작사, ‘화씨저택’으로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 (2026.6.18)
씨네21, “[포커스] 글로벌 프로젝트, 한국영화의 새로운 활로가 될까?” (2026.6.26)
이데일리, “韓 제작사가 만든 베트남 영화 ‘화씨저택’, 현지 박스오피스 1위” (2026.6.18)
Việt Giải Trí, “Lầu Chú Hỏa vượt mốc 70 tỷ đồng” (2026.6.28)
Tuổi Trẻ Online, “Chuyện hiếm thấy ở phòng vé Việt” (2026.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