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메이저 3사

우리가 한국 영화산업의 빅 3를 씨제이, 롯데, 쇼박스라고 한다면, 일본에는 도호, 쇼치쿠, 도에이로
대표되는 일본영화 메이저 3사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투자/제작/배급에 관여하고 배급이
메인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상이점이 존재한다.
먼저 각사의 설립일은 도호가 1932년, 쇼치쿠가 1920년, 도에이가 1949년으로 이 중, 가장 젊은 도에이도
50년을 넘었다. 이렇듯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들 3사는 그 역사만큼 중요시해 온 전통이 있어 이것이
각사의 컬러가 되어 있다.
각사의 컬러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성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호는 폭력, 종교, 섹스, 정치 등의
소재는 다루지 않는다. 회사의 컬러로서 따뜻하고 밝고 감동적인 영화를 선호하고 감독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의 기획영화가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해 도에이는 야쿠자영화의 전통으로부터 폭력, 섹스,
액션 등 다소 과격한 소재에 대해 관대한 편이고 해외와의 공동 작업에 대해서도 비교적 오픈되어
있는 편이다. 쇼치쿠는 과거 자사제작시스템 시절부터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는 감독을 선호하여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나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유명한 야마다 요지 감독과 함께 많은 작품을
제작해 왔다. 서민적인 따뜻한 영화를 주로 연출해 온 이 두 감독의 컬러가 쇼치쿠를 대표하는
컬러이기도 하다. 또한 메이저 3사 중에서는 가장 감독 중심의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메이저 3사는 배급과 함께 직접 영화관을 운영한다.
도호는 TOHO시네마즈, 쇼치쿠는 쇼치쿠멀티플렉스씨어터즈(이하, SMT), 도에이는 티조이라는 영화관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TOHO시네마즈와 SMT가 100% 모회사의 자회사인 것에 비해 티조이는
도에이의 100% 자회사는 아니다. 일본의 총 스크린수는 2011년 기준으로 3,412개인데, 도호가 거의
전체의 30%에 가까운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고 쇼치쿠는 1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3사 중에서 극장은 도에이가 가장 약하지만 같은 스크린수라고 하더라도 다른 독립계 영화관들에 비하면
이 3사의 직영이나 계열 영화관들의 입지조건이 월등히 좋아 숫자로만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 블록부킹 시스템

메이저 3사의 강점은 단지 많은 영화관을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 있지 않다. 일본의 영화관은 ‘방화계’로
일컬어지는 일본영화 전용관과 ‘양화계’로 일컬어지는 외국영화 전용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처럼 일정 기간 일정 편수의 일본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말한다. ‘블록부킹’이라 하여 메이저 3사는 1년 52주를 작품별로 나누어 가장 효율적으로 상영하는
스케줄을 1년 전에 미리 짜둔다. 이에 따라 자사 배급작품의 안정적인 상영기간을 미리 확보하여 리스크를
줄인다. 쇼치쿠는 2000년에 자사 배급작품의 부진으로 블록부킹을 폐지하고 일본영화,
외국영화 모두 ‘프리부킹’ 체제로 전환했지만 도호와 도에이는 블록부킹을 고수해 왔다.
블록부킹 시스템은 배급작들이 탄탄할 경우에 그 효과가 배가하는 시스템이다. ‘프리부킹’으로 대표되는
멀티플렉스의 증가와 함께 현재는 전용관의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어 ‘블록부킹’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진 듯
보이지만, 메이저 3사가 멀티플렉스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사실상 ‘블록부킹’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물론 작품에 따라 성적이 부진할 경우, 방향을 수정하는 것은 멀티플렉스가 주류인 지금이
이전 전용관 시절에 비해 수월해 졌다고는 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에 비해 할리우드영화의 개봉일이
늦은 것도 이 블록부킹 시스템에서 연유한 것이고 일본영화의 개봉 스크린수가 한국에 비해 적은 것도
역시 블록부킹 시스템으로 인한 결과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도호의 실사영화의 경우는, 어지간해서는 개봉규모가 400개 스크린을
넘지 않는다. 일본의 한국보다 스크린수가 1,000개 이상많다. 최근 한국의 <도둑들>이 1,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개봉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한국에 비해 영화사의 역사가 긴 일본의 경우, 오랜 기간의 노하우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이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는 곳이 도호이다.
도호는 지난 10년 이상 일본영화 흥행 10위 안에 꾸준히 6~7작품을 올리고 있고 일본영화
흥행수입의 60~7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배급작품의 실패율 또한 10% 미만이다.
이 배경에는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영화관 전략이 있다. 최근 도호의 영화관 체인에는 타사의 예고편도
거의 들어가기가 어렵다. 10년 이상 업계 선두를 걷고 있는 도호의 수많은 히트작은 상영 시 다음 작품의
예고편을 소개함으로써 히트 중인 작품을 관람한 많은 관객들에게 다음 작품이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다시 영화관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하여 비용을 가능한 줄이고 일정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굳이 개봉규모를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 도호의 거의 모든 작품에 방송국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타작품에 비해 현격히 낮은 마케팅비로도 충분한 노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20억 엔 이상의 6~7배에 가까운 P&A를 투여해도 도호 배급작품의 노출을
따라올 수 없는 데에는 ‘방송국영화’라는 배경이 있다.